승강기, 안전검사 받고 반 년도 안돼 중대사고

2024-10-18 13:00:24 게재

2019년 이후 35명 사망, 344명 부상 당해

‘안전검사 시스템’ 허점 파고든 일탈이 한몫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승강기 안전사고의 배경으로 부실한 안전점검이 지적됐다. 안전검사 받아도 반 년도 못 넘겨 중대사고가 발생하는 실정이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소위 승강기 강국이지만 최소한의 안전점검 부실에 따른 후진적 사고와 고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 승강기 보유대수는 85만여대로 세계 7위다. 여기에 연간 신규 설치대수가 4만여대(세계 3위)여서 보유대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승강기는 화물운반용의 경우 1910년 조선은행에 처음 설치됐고, 승객용 승강기는 1914년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에 설치됐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아파트 건설 붐으로 승강기가 빠르게 늘었다.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우리나라는 승강기가 단 하루만 멈춰서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교통수단이 됐다.

지난 6월 13일 인천시 중구 항동7가 모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운행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8월 현재 사망자 전년 수준 넘어서 = 이 때문에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안전이 더욱 강조되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승강기 중대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총 379명이었다. 이중 35명이 사망하고 344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6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사상자 중 이용자를 보면 2019년 77명 중 65명, 2020년 91명 중 72명, 2021년 80명 중 62명, 2022년 56명 중 50명, 2023년 43명 중 37명이었다. 나머지는 건물 관리자(3·5·4·1·1명)와 승강기 기술자(9·14·14·5·5명)들이었다.

연도별로 사망자 현황을 보면 2019년 3명, 2020년 10명에서 2021년 5명, 2022년 4명으로 감소하다 2023년 6명으로 되려 늘어났다. 2024년(8월)도 이미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지난해 규모를 넘어섰다.

원인별 사고 발생 현황은 이용자 과실이 171건(전체 대비 47.3%)으로 절반을 웃돌고 있으며, 이어서 △작업자 과실 53건(14.6%) △유지관리업체 과실 40건(11.0%) △관리주체 과실 18건(4.9%) 등이 뒤를 이었다.

시·도별로는 수도권인 △경기 95건(사망 11명, 부상 90명)이 가장 많았다. 이어 △경남 22건(사망 2명, 부상 20명) △충남 15건(사망 2명, 부상 13명) △강원 13건(사망 0명, 부상 13명) △전남 8건(사망 3명, 부상 7명) 등이었다.

상대적으로 승강기 설치 댓수가 적은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빈번하게 중대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도 고장 건수는 2019년 8591건, 2020년 1만7316건, 2021년 2만3358건, 2022년 2만3796건, 2023년 2만3516건으로 집계됐다.

한병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승강기는 국민 일상 속에서 중요한 이동 수단인 만큼 더욱 확실한 안전 담보가 필요하다”면서 “승강기안전공단은 법정 안전검사의 실효성 및 검사 주기를 재검토해 승강기 안전에 빈틈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 확보 정기검사, 위탁기관서 수행 = 이처럼 사고가 끊이지 않은 배경에는 부실한 안전관리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강기 안전검사는 4가지의 종류가 있다. 승강기 설치공사가 끝난 후 하는 완성검사,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정기검사, 승강기 운용에 변화가 있을 때 실시하는 수시검사 그리고 설치 후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거나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실시하는 정밀안전검사 등이다.

이중 승강기 안전관리는 승강기 관리주체가 유지관리업체를 통해 자율적으로 매월 실시하는 자체점검과 행정안정부가 지정한 검사기관이 통상 1년 주기로 진행하는 정기검사가 핵심이다. 자율관리를 기반으로 정기검사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것이다.

정기검사의 경우 승강기관리법에 따라 업무대행기관으로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정받은 비영리법인인 민간 검사기관이 실시한다.

최근 정기검사가 형식에만 치우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상자가 발생한 중대사고 2건 중 1건은 마지막 법정 안전검사를 받은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발생하고 있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중대사고 발생 승강기의 마지막 법정 안전검사일과 사고 발생일 차이는 1개월 이내~6개월 이내 196건, 7개월 이내~9개월 이내 81건, 9개월 이후 및 안전검사 미수검 84건으로 드러났다.

◆지정검사기관 ‘도덕적 해이’ 논란 = 뿐만 아니라 지정검사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도 논란거리다.

최근 한국표준기술원은 행정안전부 지정 검사기관 5곳 중 한곳인 A업체에 대해 공인검사기관 인정을 취소했다. 더 이상 승강기 안전점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판정이다.

인정취소의 원인은 해당 업체 임원이 실무 검사자에게 불합격 판정을 번복하게 압력을 가한 사실이 확인된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7월 대구의 한 초등학교 승강기 정기검사에서 검사원이 비상 정지장치에서 당장 운행을 멈춰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결함을 발견했다.

비상 정지장치는 탑승자의 의지와 달리 승강기가 갑자기 움직이는 등 돌발 상황에서 운행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안전 장치다.

안전에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한 검사자들은 당연히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운행을 중단시켰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조건부 합격으로 결과가 뒤바뀌었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승강기는 운행이 중단되고 지자체에도 통보되지만, 조건부 합격으로 번복되면서 이런 안전조치가 모두 무시됐다.

이 승강기는 1층 급식실에서 5층 교실까지학생과 교사들이 매일 이용한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뻔한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뻔한 이 일은 부적절한 유착 때문이라는 내부 폭로가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불합격 판정을 재고하라는 검사기관 임원의 지시를 간부급 직원과 현장 검사자들이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판정 재고를 종용한 임원은 해당 승강기 유지보수업체 대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해당 업체 내부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관리감독 기관인 행정안전부는 감사를 실시했고, 조사 결과를 한국표준기술원에 통보했다.

◆‘배임혐의’로 경찰 수사 받기도 = 또 다른 업체는 경영진의 ‘비리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A 재단의 노동조합은 지난 2월 재단의 이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노조는 이사장이 관련 경력이 없는 자녀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또다른 자녀는 법인 차량을 개인적으로 이용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사장 개인 명의 사무실을 고액에 회사가 임차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측은 “재단이 준조세 성격의 승강기검사수수료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 수수료가 검사원 복지향상이나 사회공헌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 개인과 그 가족 재산축적에 사용되고 있다”며 “행정안전부에 탄원서도 제출했지만 조치가 내려지지 않아 고발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법인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라며 “피의자 조사를 일부 진행했고, 필요한 경우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단측은 이에 대해 법인차량은 이사장 명의로 전환했고 임차료가 비싼 것은 보증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측은 “사실이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점검 요건을 강화하고 기존 제도에 허점이 있는지 점검 중”이라며 “문제가 발견되면 법과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용자 과실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 비율도 높아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며 “특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부 기관이나 개인 일탈에 대해서도 제재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후 승강기 증가 = 전문가들은 승강기의 경우 자동차나 선박, 항공기 등 이른바 면허를 소지한 사람만이 작동하는 다른 이동수단들과 달리 건축물에 설치돼 버튼만 누르면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라는 점에서 철저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승강기는 불특정한 국민이 이용하는 시설물이므로 안전확보라는 공적인 역할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비영리 재단법인인 안전점검기관들이 정기점검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어 공적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덕적 해이는 물론 비전문가들이 운영에 대거 참여하고 있어 제도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면서 “노후 승강기가 25만대 수준에 달해 안전관리 시스템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실 제도의 문제보다는 현행 제도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이용하는 행태가 문제”라며 “이를 차단할 수 있도록 보다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세풍 박광철 이재걸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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