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돌봄 화천커뮤니티센터

화천군, 교육지원과 돌봄으로 소멸 위기 극복

2024-10-23 13:00:02 게재

화천커뮤니티센터, 저학년 학생 온종일 돌봄·초중고 학생들 학습공간 … 주민 위한 학교복합시설

“위장전입 NO. 교육활동 공간이 부족하여 안정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어렵습니다.”

17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초등학교 정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다. 강원도 최북단에 위치해 철도도 없고 인접한 고속도로도 없는 인구 소멸 위기 지역에 아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출산율 상승, 학령인구 이탈 감소, 타 지역에서 화천으로 전입 증가 등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화천군은 2022년 전국에서 여섯번째로 높은 합계출산율(1.40명)을 기록했다. 2019년부터는 중학교 졸업생보다 고등학교 졸업생이 더 많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교육과 돌봄, 주거지원을 통한 화천형 저출생 대책이 효과를 나타내 중학교 졸업생 대비 고등학교 입학생 비율이 100% 이상"이라고 소개했다.

화천군이 운영하는 초등 온종일 돌봄 시설인 화천커뮤니티센터는 전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2월 말 문을 연 후 5월까지 모두 17개 기관단체에서 368명의 방문단이 화천커뮤니티센터를 방문했다. 외신들의 취재를 위한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보육문제 해결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고 머물러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기 위한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화천군의 교육실험을 소개한다.

화천커뮤니티센터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온종일 돌봄과 지역 학생들의 방과 후 수업을 위한 학교복합시설이다.

"What do bats eat(박쥐는 무엇을 먹나요)?

바나나요, 포도요.

Do bats eat grapes?(박쥐가 포도를 먹나요?)"

17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커뮤니티센터(센터)에서 오후 2시30분부터 시작된 영어수업시간에 원어민 교사의 지도에 따라 대답을 이어가는 학생들. 대형 화면에 등장하는 박쥐와 각종 먹잇감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영어를 배운다. 학생들이 한국어로 대답하면 원어민 교사는 영어로 환기시킨다. 원어민 교사와 학생들의 소통이 단절되면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한국인 담임교사가 돕는다.

화천군이 초등학교 1·2학년 돌봄 대상 학생을 위해 마련한 영어수업의 한 장면이다. 센터는 아이들이 학교수업을 마치고 오는 시간을 고려해 오후 2시 30분부터 5시까지 3교시의 정규수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이후는 자유활동과 개인학습지도가 이루어진다.

마음의 심성을 다듬어가는 동화테라피 수업.

정규수업 과정은 △원어민 교사와의 영어 △아동요리 △마음의 심성을 다듬어가는 동화테라피 △음악태권도 △창의미술 등 다양한 수업으로 구성된다. 각 수업은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 특화된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지자체 주도 온종일 돌봄 서비스 구현 = 화천군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자체가 주도하는 온종일 돌봄 서비스를 구현했다.

센터는 단순한 보육을 넘어 학부모, 지자체, 공교육 기관들이 더 나은 아이들 성장 환경 조성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화천초 부지에 건립된 센터는 216억원 가량 사업비가 투입됐다. 연면적 5135㎡ 규모의 센터는 지하 1층에 공연장, 1층에 실내 놀이터와 파티룸, 2층에 돌봄시설과 실내체육관, 창의교육실, 3층에 돌봄시설과 장난감 대여소, 유아 놀이실, 4층에 글로벌 교육실과 진로진학 상담실, 스터디카페 등을 마련했다.

센터는 1학년 4개 반, 2학년 2개 반을 운영한다. 각 반은 15명으로 80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교실에서 체험형 활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보다는 교육 환경의 효율성을 고려했다.

아동요리수업 장면.

대상자는 부모가 직장생활 등으로 종일 돌봄이 어려운 맞벌이 가정, 다자녀 가정 위주로 선발했다. 시설 운영에는 공무원과 센터장, 돌봄교사 등이 배치된다. 학기 중에는 평일 하교 후부터 오후 7시, 방학 중에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돌봄시간에는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영어와 독서, 문해력 증진 교육, 창의력 확대를 위한 다양한 특별활동이 전문 강사진에 의해 진행된다. 특히 학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인 외국어 교육을 위해 각 돌봄 반마다 내국인 담임과 원어민 담임을 각각 1명씩 배치하는 2담임제를 도입했다.

◆학부모 73명 전원이 ‘만족’한다는 답변 = 센터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응도 뜨겁다. 화천어린이도서관에 근무하는 유소라씨는 초등 1, 2학년 두 아이를 센터에 보내고 있다. 유씨는 “간식비 이외에 비용 부담이 없고 프로그램에 만족한다”며 “3학년까지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맞벌이 부부가 마음 놓고 직장에 다닐 수 있게 해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교육 분야에 더 많은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음악태권도수업.

이러한 평가는 화천군이 6월 온종일 돌봄 교실 학부모 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방식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응답한 학부모 73명 전원이 ‘만족’한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 가운데 71%에 달하는 52명이 ‘매우 만족’ 항목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부모들은 돌봄교실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원어민 영어 클래스(90%·66명)를 꼽았다.

조사결과 센터의 돌봄교실은 자녀뿐 아니라 학부모 자신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자 중 68%인 50명은 온종일 돌봄교실 덕분에 자녀 양육시간 부담이 줄었다고 답했다. 또 67%인 49명의 학부모는 비싼 사교육비 부담 역시 경감돼 만족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현재 초등 1~학년 대상인 시스템을 3학년까지 늘려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학생과 주민 모두에게 개방되는 복합시설 = 센터는 초등 온종일 돌봄시설이지만 지역 초·중·고교생 모두에게 개방되는 학교복합시설이기도 하다. 초등 3~6학년의 방과 후 공교육 커리큘럼이 이곳에서 진행되며 중고교생을 위한 진로진학 상담 프로그램도 열린다. 센터 진로진학 상담실에서 9월 8일 대입 수시 집중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전 신청을 한 수험생과 학부모 대상 집중상담은 1인 40분이 소요될 만큼 개인별 맞춤 컨설팅이 이뤄졌다. 상담에서는 내신 및 학생부 분석에 따른 수시 지원 전략, 합격예측 프로그램을 통한 분석, 희망 대학과 학과 배치 상담, 수능 최저학력기준 및 면접고사를 고려한 수시 지원전략 등이 다뤄졌다. 상담에는 국내 최고 수준의 교육과 입시 컨설턴트들이 참여했다.

원어민 교사와의 영어수업.

화천군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대학 희망 학생들을 위해 지역 풀브라이트 원어민 교사 재능기부를 통한 상담도 주선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풀브라이트 원어민 교사인 리아 도허티(여·26)씨의 재능기부 결정에 따라 5월부터 센터 진로진학 상담실에서 해외 대학 진학을 위한 상담을 시범운영했다. 상담에는 지역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참여해 학생 당 매주 3~4회 이뤄졌다.

센터 내에 마련된 진로진학 상담실 이용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천군이 진로진학 상담실 개관 직후인 6월 25일부터 7월 24일까지 운영한 후 실시한 만족도 조사결과 응답자 56명 전원이 100%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매우 만족’ 답변이 86%를 차지해 이용자들이 상담 서비스의 질에 크게 만족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센터는 음악회나 가족뮤지컬 등을 통해 지역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학교복합시설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외 벤치마킹 줄이어, 외신들도 취재 열기 = 센터는 국내 지방자치단체와 외신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화천군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5월 8일까지 모두 17개 기관단체에서 368명의 방문단이 화천커뮤니티센터를 방문해 온종일 돌봄 프로그램과 운영 시스템 등을 벤치마킹하고 돌아갔다. 이 같은 방문 신청은 이어지고 있다. 벤치마킹 대상도 화천커뮤니티센터뿐만 아니라 화천군이 전국 최초로 시행했던 대학생 자녀 장학금 실납입액 전액 지원, 매달 최대 50만원의 거주공간 지원금 지급, 청소년 무상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여행 제도, 초등생 스마트 안심셔틀 운행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이르고 있다.

화천커뮤니티센터 아이들이 1교시 수업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특히 국내 지방자치단체 의회 교육청 등 국내 기관뿐 아니라 외신들도 화천군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통신사인 교도통신이 화천군의 교육지원과 돌봄 시스템을 현장 취재 후 보도했다. 5월 3일에는 싱가포르 국영방송사인 CNA에서 화천군 공공 산후조리원 다자녀 가정 화천커뮤니티센터 등을 취재 차 방문했다.

8월에는 화천형 온종일 돌봄 시스템이 미래를 대비하는 혁신사례로 꼽혔다. 행정안전부는 8월 6일 2024 정부혁신 왕중왕전 ‘미래를 대비하는 정부’ 분야에 제출된 192개의 정책 사례 중 ‘전국 최초 지자체 책임형 온종일 돌봄 시스템 구축’에 대한 우수사례로 화천커뮤니티센터 등 14개 사례를 선정했다.

화천=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사진=이의종

한국교육개발원·내일신문 공동 기획

김기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