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한은행 인도네시아 부실↑… 하나, 중국 진출 법규 위반
재무건전성·유동성 악화 보고체계 미흡 … 감독당국, 반기보고 받아 즉각 대처 어려워
2018년 은행법 시행령 개정으로 해외진출 규제완화 … “조건부 신고수리 도입 필요”
KB국민은행이 인도네시아 부실은행인 부코핀은행(현 KB뱅크)을 인수한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신한은행도 인도네시아에서 부실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은 중국에 진출하면서 자회사 출자규제를 위반했으며 현지 감독당국으로부터 제재도 여러 차례 받았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지만 내부통제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는 4대 시중은행들 조차 위험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전반적인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연구 11권(은행권 해외진출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발간을 통해 “부코핀은행의 2020년과 2021년 부실채권(NPL)비율은 10.16% 10.66%, 신한은행의 자회사인 신한인도네시아의 2020년과 2021년 NPL비율은 5.77%, 3.97%로 인도네시아 감독당국(OJK)이 밝힌 상업은행의 평균 NPL비율(3% 초반)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은행 등의 금융사고와 해외 현지법인 투자 및 운영 부실 등에 대해 정기검사 과정에서 면밀히 점검하고 근본적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부코핀은행 인수당시 부실채권비율 6.67% = 국민은행이 부코핀은행 지분을 처음 인수했던 2018년말 이미 NPL비율은 6.67%로, 당시 인도네시아 상업은행 평균인 2.3%를 상회했다. 반면 신한은행이 인도네시아 현지은행을 인수해 신한인도네시아를 출범할 당시 NPL비율은 1.36%로 부코핀은행과 다르게 양호했다.
하지만 2019년 NPL비율은 3.17%로 상승했고, 2020년 5.77%로 급증했다. NPL비율 악화의 주원인은 신한인도네시아의 거액 채무자(그룹) 중 하나가 사업에 문제를 겪으면서 신용의 질이 하락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을 작성한 성무현 금감원 선임조사역은 “은행이 인수하고자 하는 해외 현지 은행의 NPL 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거나, 추가적인 유상증자 과정에서 향후 부실화될 채권 규모를 확연하게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은행이 그와 같은 상황의 해외 현지 은행 인수를 추진할 경우 감독당국이 이를 저지할 법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며 “현지 은행을 인수한 후 운영 과정에서 NPL비율이 악화될 경우에도 감독당국이 이를 신속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감독당국은 현재 해외점포에 대한 업무보고서를 통해 재무건전성 악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주기가 반기별로 설정돼 있어서 해외 현지 은행의 재무건전성 상황에 대해 신속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해외점포에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감독당국에 즉시 보고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성 선임조사역은 “신용리스크와 관련해 해외진출규정에서 NPL비율 등이 악화될시 감독당국에 지체 없이 보고할 수 있는 체계가 구비돼 있지 않았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라며 “업무보고서상 반기별로 외화유동성비율을 보고받는 현행 체계로는 유동성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나은행, 신고 이후 자회사 출자 규제 위반 = 문제는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규제가 완화되면서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은행들도 진출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4대 시중은행은 규모가 커서 해외점포 부실이 본점을 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은행들은 더 취약할 수 있다.
정부는 2018년 은행법 시행령 개정으로 은행의 투자 규모가 크지 않을 경우(자기자본의 1% 이하)에는 사전 신고의무를 면제하고 사후보고 허용범위를 확대했다. 은행들은 해외진출규정 심사요건과 신고수리 요건만 갖추면 되게 됐다. 은행은 은행법상 자회사 출자제한과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 등의 기본적인 요건만 통과하면 해외점포 인수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은행이 감독당국에 투자신고서를 제출해 신고수리를 위한 심사절차가 진행될 당시에는 자회사 출자요건을 충족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지 은행의 지분 인수 후 출자요건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나은행은 중국 자산관리시장 진출을 위해 2017년 북경랑자자산관리유한공사 지분 25%를 취득했다. 금융위원회에 은행법상 ‘자회사 출자 허용 업종’ 회신을 받은 하나은행은 당시만 해도 자회사 출자요건 충족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분 인수 후에 북경랑자하나는 자산관리업을 영위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자산관리업을 하려면 절차를 거쳐 ‘기금업종사자격’을 보유해야 하는데, 북경랑자하나의 법정대표자가 ‘기금업종사자격’을 보유하지 않아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하나은행은 금융업을 영위하지 않는 북경랑자하나의 의결권 있는 지분증권을 15% 초과 소유해 자회사 출자 규제를 위반했고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하나은행 현지법인은 중국 감독당국으로부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6차례 제재를 받았다.
성 선임조사역은 “최근에 발생한 해외 금융시장의 불안상황과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을 고려할 때, 투자액이 크지 않더라도 자본비율과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좋지 않다면 해외진출시 이에 대한 감독당국의 심사가 엄격히 이뤄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본점 차원, 해외점포 감독책임 강화해야 =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은행의 투자액 보다는 자본비율과 종합평가 등급을 먼저 고려하고 있다. 또 감독당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과하는 것을 조건으로 승인을 해주고 있다.
성 선임조사역은 “인수를 추진하는 피인수은행의 재무건전성이 부실하거나, 현지의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피인수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정상화에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면 감독당국이 향후 은행의 지속적인 정보제공을 조건부로 수리할 수 있는 규정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함께 해외점포 업무보고서의 보고주기를 반기에서 분기별로 단축하고 지연보고에 대한 은행의 책임을 명확하게 해서 보고의무를 충실히 준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차 감독책임이 있는 은행 본점의 자체 감독시스템 강화도 필요하다.
현행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은 은행이 국외 현지해외법인, 국외지점 및 국외사무소로 하여금 현지 감독기관의 건전 경영을 위한 법규 및 명령을 준수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 선임조사역은 “은행에 대해 해외점포 경영진이 경영활동을 지속적으로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해외점포의 법적 위험 등에 대한 정보제공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위험자산, 시장위험에 대한 노출정도, 유동성 관리 실태, 내부통제 등에 대한 정보제공도 의무화하고 더 나아가 이 같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은행 자체적인 해외점포 관리시스템을 고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