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공허한 메아리 된 4대 개혁

2024-11-05 13:00:01 게재

‘4대 개혁’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국 반전에 나설 때마다 단골 메뉴로 꺼내든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4대 개혁 카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국무총리가 대독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국가 번영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4대 개혁 추진이 곧 민생”이라면서 “4대개혁 추진에 박차를 가하라”고 비서실과 내각에 당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윤 대통령 말은 현재로서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시행령 일방통행으로 독선과 불통

4대 개혁 성적표는 초라하다.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의견 대립 속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무산된 연금개혁은 최근 정부 단일안을 내놓았지만 야당의 부정적 반응에 대화의 진전이 없다. 앞서 정부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높이고 소득대체율도 40%에서 42%로 상향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9월에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국회에서 이뤄진 공론화 과정이 반영되지 않은데다 세대별 차등 인상이 유례가 없고 자동안정장치 도입시 지급받는 금액이 줄어들어 야당 등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의대 2000명 증원이 발표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의정갈등은 여전하다. 내년 증원 규모가 확정됐고 수능이 임박했지만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병원과 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여당 주도로 추진 중인 여·야·의·정협의체가 야당 반발 등으로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 협의체가 시작된다 해도 갈등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전공의와 의대생은 2025년 정원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정부는 “수능이 임박해 내년 의대 정원 수정은 불가능하다”며 팽팽히 맞선다. 의료개혁도 빈손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늘봄학교와 유보통합 등으로 성과가 기대됐던 교육 분야도 의정갈등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의대생들의 휴학을 허용했는데 기존의 두배가 넘는 의대생을 내년에 한꺼번에 교육해야하는 상황에 부닥친 상태다. 유보통합은 교사 통합에 대한 유치원 교사의 반발 등이 커 진통이 예상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강력히 추진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부작용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노동개혁 역시 핵심 과제인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야당과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정권은 ‘김건희 리스크’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다. 특히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한국갤럽 10월 29~31일 조사, n=1005명) 지지율 10%대는 일종의 레임덕 구간으로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아 정부 정책이 실현될 수가 없다. 국정 운영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4대 개혁 완수’라는 장담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4대 개혁 추진과 홍보에 집중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정국 장악력과 주도권을 확보하겠다고 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 개정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근로시간유연제나 정년연장 문제 등은 시행령을 최대한 활용해 연내 4대 개혁의 성과를 내겠다는 방침인 모양이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신속히 추진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위법령 개정이 상위법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만큼 지속가능성이 낮아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시행령 일방통행이 지속되면 독선과 불통의 이미지만 강해질 뿐 정국전환의 카드는 될 수 없다.

국회 협조, 야당과의 협치 없이는 개혁 불가능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동력을 되찾기 위해 우선해야 할 일은 ‘소통’이다. 4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역할을 인정하고 설득해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임에도 제1야당과 대화는커녕 여당 대표와도 갈등해서야 4대 개혁이 가능할까. 개혁의 제도화 법제화는 국회 협조, 야당과의 협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4대 개혁이 분산적 부분적인 개혁이 되지 않으려면 중앙집권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각 부처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의료·교육·노동개혁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경직되고 지나친 간섭은 커다란 후유증을 낳았다. 4대 개혁을 추진할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폭넓게 발탁해 개혁 추진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지지율 10%대에 담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시대에 뒤처진 독선과 불통 국정기조를 전면 쇄신해야 개혁의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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