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추락하는 정권, 날개가 없다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반환점을 채 돌기도 전에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야당으로부터 노골적으로 ‘임기단축’ ‘탄핵’을 요구받은 대통령은 여태껏 없었다.
영부인이 공공연하게 “철없는 우리 오빠” “당신이 대통령 자격이 있는 거냐”며 대통령을 만천하에 웃음거리로 만든 정권도, “나를 감옥으로 보내면 한달 안에 정권이 무너진다”는 정치브로커의 노골적인 협박과 조롱에도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우물쩍거린 대통령실도 없었다. 여당 대표가 임기 절반을 남긴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으로 사과와 쇄신을 요구한 정권도 물론 없었다.
게다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데도 아무 문제의식이 없는 대통령도, 기자회견이랍시고 할 때마다 국민 부아를 돋우는 대통령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지금 위기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쌓아올린 업보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어찌 됐든 사과한다”며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기자회견 내내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내가 뭘 잘못했느냐’였다. 진심어린 참회나 국정쇄신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논란의 중심이 된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서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김 여사의 국정농단 의혹엔 ‘조언’이라고 했고 김건희특검법은 정치선동이고 인권유린이라고 했다. 애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국민 눈높이와 달라도 너무 다른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보면서 이제는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갖게 됐을까.
사실 윤석열정권의 실패는 애초 예견된 것이었다. “평생 상명하복의 검찰 질서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다기화된 민주사회를 이끌기 어렵다”고 대선 당시 한 정치원로가 지적했던 것처럼 ‘검사 윤석열’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 대통령은 정치초년생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배우려는 자세도, 권력에 내재한 비극성을 경계하려는 마음가짐도 갖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냥 국가가 쥐어준 권력을 휘두르던 검사인냥 ‘검사스러운 정치’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입’보다 ‘귀’를 열어야 한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남의 말을 경청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긴 자기 맘에 안 들면 상스러운 어투로 ‘격노’한다는데 누가 감히 대통령 앞에서 ‘아니올시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김 여사 문제도 일찍부터 우려됐던 일이다. 7시간 통화 등으로 대선 당시에도 ‘여사 리스크’가 부각됐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대통령실은 아무런 제어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실 참모나 각료들 중에는 공공연하게 ‘여사 라인’임을 내세우며 호가호위해온 이들이 적지 않다. 윤석열정권이 맞닥뜨린 현재의 위기는 이처럼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올린 업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에서는 곧 있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선고 후 세간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현안에 대한 입장 발표도 그 이후로 미루려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절망감과 분노가 전혀 다른 트랙이라는 걸 대통령과 그 주변만 모를 수 있을까.
지금 주권자들은 박근혜정권 때처럼 광장에 나서지 않지만 이미 윤 대통령에 대해 ‘심리적 탄핵’을 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촛불항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말아먹은 문재인정권에 대한 가슴쓰린 기억과 당장 급한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촛불을 들지 않을 뿐이다. 분노가 임계점을 넘으면 주권자들은 ‘의미심장한 침묵(Pregnant Pause)’을 깨고 쏟아져나올 것이다. 현재로선 그 임계점이 청명에 올지 한식에 올지만 남은 상태다.
반환점 돈 후 윤석열정권이 어디로 갈지가 관전포인트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이런 여론조사 지표 이면을 보면 윤석열정권은 이미 레임덕(lame-duck)을 넘어 블러드덕(blood-duck), 데드덕(dead-duck)에 근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수언론조차 강경한 어조로 정권과 손절에 나선 게 그 반증이다. 총선 전부터 계속된 경고음을 무시하고 ‘불통의 진격’을 해오던 정권이 이제 와서 제2부속실을 만든다 어쩐다 하며 부산을 떨지만 백약이 무효일 것 같다.
반환점 후 윤석열정권은 어디로 갈까. 탄핵일까. 임기단축 개헌일까. 아니면 식물정권으로 남은 임기를 채울까. 그것이 아닌 다른 선택지는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라도 더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이 김건희특검법을 전격 수용하고, 자신을 포함해 김 여사까지 성역없이 수사하라고 한다면 얼마동안의 연명은 가능할 수도 있겠다.
남봉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