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지구의 과거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들

2024-11-12 13:00:01 게재

한석규 배우가 프로파일러 역할로 나오는 TV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중이다. 복잡하게 꼬이고 얽힌 사건의 진실을 함께 추측해 보기도 하고, 제시된 여러 사실을 나열하며 나름의 결론을 내면서 몰입을 하게 되었다. 이번주 마지막회 결말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최근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여겨지는 ‘프로파일러’는 범죄행동을 과학적 증거기반으로 분석하는 수사관을 의미한다. 프로파일러는 사건의 증거나 용의자의 패턴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사건의 전말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월리엄 스미스와 아서 홈즈의 업적 주목

지구의 과거를 연구하는 지질학자 중에도 이런 프로파일링 방법으로 큰 업적을 이룬 연구자가 여러명 있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태어난 윌리엄 스미스는 일생의 대부분을 독학으로 공부했는데 총명하고 관찰력이 좋아 열여덟살에 측량조수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곧 야외 측량업무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스미스는 여러 탄광을 조사해 다양한 지층과 탄층을 기록하며 지층이 수직적 깊이 방향으로 분포하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후 소머셋 탄광 운하공사에 참여하며 지층이 지하 탄광과 지표의 수평적 방향으로 반복되며 3차원적으로 연결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층서학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다. 나아가 화석을 이용하면 지층을 특정할 수 있고, 지층의 나이가 지층의 상대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동물군 천이의 원리(Principles of faunal succession)’를 정립했다.

윌리엄 스미스는 1799년 최초의 광역지질도인 영국 소머셋 배스 지역 지질도를 만들었는데 이는 지층의 수직-수평 방향으로의 연장성을 색상으로 표현한 최초의 지도였다. 이후 1815년 최초의 영국지질도를 출간했는데 현재의 영국지질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매우 정확했다.

이 지질도에는 지층의 연장성과 상호관계, 지질구조를 포함한 지질단면도를 지도에 표현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정보를 담고 있었다. 영국지질학회는 이후 스미스를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라고 불렀고 1815년 영국지질도를 입구 로비에 지금도 전시하고 있다. 영국의 작가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 지질도를 “세계를 바꾼 지도”라고 부르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태어난 아서 홈즈의 지구연대측정 업적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현대과학적 방법으로 암석의 나이를 측정하는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학부과정 논문과제로 노르웨이 데본기 암석을 이용해 우라늄-납 연대측정법을 처음으로 개발했으며 이 결과를 1911년 논문으로 출간했다. 1913년에는 유명한 저서인 ‘지구의 나이’를 저술했는데 이 책은 방사성 원소를 사용한 연대측정법의 결과를 지질퇴적 지층과 비교했고, 나아가 지구냉각 이론과의 비교검토를 시도했다.

이 책에서 아서 홈즈는 시생대 암석의 나이가 16억년이라는 것을 증명해 당시 영국 과학계에서 지지를 받고 있던 물리학자 켈빈경의 지구냉각속도 기반의 지구 나이 1억년 미만이라는 주장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이 시기에 곧 동위원소가 발견되었고 홈즈는 본격적인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의 연구에 매진해 후 ‘현대 연대측정학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아서 홈즈는 많은 지질학자들이 비판했던 대륙이동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맨틀대류와 방사성 물질 붕괴에 의한 열 생성에 의한 지각이동을 제안했다. 이는 1970년 이후 다양한 관측과 증거로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아서 홈즈는 정성적인 상대적인 비교만 가능하던 수준의 지질학에 정밀한 분석과 측정연구를 통해 지질학 연구에 수치 연대측정학이라는 도구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 지구의 역사를 정교하게 재구성한 진정한 현대적 프로파일러였다.

지구의 과거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이유

지금도 전세계의 많은 지구과학 연구자들은 지구의 현재를 정확히 이해하고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 곳곳의 극한지역과 오지를 마다하지 않고 증거단서를 찾아다니며 시료를 실험실로 가져와 초정밀 분석측정을 수행한다. 이 결과를 이용해 지구의 행동패턴과 연속성을 찾아내고 궁극적으로 과거의 흔적을 시간순서로 재구성해 지구의 현재와 미래 현상을 예측하는 것이다.

지구의 과거는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알려주는 중요한 열쇠다. 우리 인류는 ‘이토록 치밀한’ 프로파일러처럼 지구에게 당면한 기후위기 문제를 통시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해 미래의 지구를 지속가능한 모습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기욱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