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탈원전 ‘우클릭’…실용 명분 대선 보폭 확장
국회 산자위, 원전개발·지원예산 여야 합의 처리
민주 지난해 전액 삭감과 대조 … “현실 고려해야”
예산 전쟁 중 이 대표 ‘실용주의’ 반영 행보 눈길
여야가 내년 예산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원전 개발 및 지원 예산을 합의 처리해 눈길을 끈다. 특히 지난해 정부의 원전생태계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안보다 1억원을 늘리는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금투세 폐지에 이어 원전 예산 증액을 놓고 이재명 대표가 강조하고 있는 ‘먹사니즘’(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의 영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2일 예산결산소위원회가 전날 심사한 2138억8900만원 규모의 원전 관련 예산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1500억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사업(329억2000만원), 원자력 생태계 지원 사업(112억800만원), 원전 탄력운전 기술 개발(35억원) 등의 예산이 포함됐다. SMR 제작지원센터 구축 예산은 정부가 편성한 54억800만원에서 1억원 늘어났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에 진행된 산자위의 예산안 심사에서 정부가 제출한 원전 생태계 정상화와 관련해 1813억7300만원의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과는 대조적 행보다.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 심사에서 원전 관련 9개 사업 전체에 대해 전체 또는 일부 감액을 요청했으나 소위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 수준에서 합의를 이뤘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야당의 삭감 주장에 정부여당이 동의하지 않았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안으로 넘겨야 되는 상황이었다”면서 “동해안 석유시추 관련 ‘대왕고래’ 사업 예산 삭감(50억원)을 위해서라도 원전예산 합의처리가 불가피 했다”고 밝혔다. 증액된 1억원의 경우 원전 관련 부품소재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예산이라고 했다.
표면상으로론 여야 합의 불발에 따른 정부안 반영 가능성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강조했지만 원전 관련 예산에 대한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드러냈다. 산자위 소속 민주당 한 의원은 “여야 상황을 고려한 판단도 있지만 다양한 에너지원을 혼합해 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도 반영된 것”이라면서 “이재명 대표의 영광 발언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 유세 과정에서 원전 문제를 언급하며 “정치는 원칙만 따져서는 안 된다. 영광원전이 내년까지가 기한이더라도 안전하고, 주민들 동의가 있으면 가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재선의원은 이와 관련해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준비가 아직 안 돼있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노력은 계속 이어가면서 전력수급 문제 등 현실에 대한 반영은 불가피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민주당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도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자칫 ‘탈 원전 기조’에 갇혀 원전 폐기물 관련 대안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포함돼 있다. 김성환 의원은 지난 8월 고준위 특별법을 발의하며 “원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원전을 사용한 우리 세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특별법을 마련해 부지내 저장시설을 원전의 당초 설계수명 이내로 제한해 정부의 확장일변도 원전정책에 제동을 거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2030년부터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는 원전 고준위 폐기물과 관련한 제도화를 이번 정부에서 처리해 다음 정부가 갖는 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도 원전 폐기물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중대과제”라며 “재생에너지를 중심축으로 간다는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현실적인 ‘에너지원 믹스’에 대한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명 대표는 지난 4일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금투세를 강행하는 게 맞지만, 현재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주식시장에 기대는 1500만명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금투세 폐지’ 입장은 당의 당초 입장과는 거리가 있지만 여론과 주식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한 대표적인 실용적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