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범람, 열받는 지구

2050년 전세계 폐플라스틱 약 62% 증가 가능성

2024-11-18 13:00:04 게재

플라스틱 국제 협약 마련 위한 마지막 회의 개막 초읽기

생산-소비-재활용 등 단계별 흐름 제어는 최소한의 관리

플라스틱과 온실가스는 닮은 꼴이다. 둘 다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고 처음에는 문제가 없다가(심지어 플라스틱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난제로 등극했다. 게다가 둘 다 환경문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쉽사리 끊어낼 수도 없다.

최근 기후위기 부정론을 내세우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전지구적인 탄소감축 노력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질의 흐름은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획기적인 기술이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면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2050년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이 2020년보다 약 62% 증가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도 2020년 대비 2050년 약 37%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18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2050년까지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해결방안’에 따르면,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은 2020년 425Mt(메가톤)에서 2050년 687Mt으로 약 62% 늘어날 전망이다. 687Mt은 페트병(500㎖) 한개 무게를 약 20g으로 가정했을 때 약 3조4350억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만약 이렇게 플라스틱 폐기물이 늘어가게 되면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상승할 수 있다. 2020년 2.45GtCO₂e(여러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수치)에서 3.35GtCO₂e로 증가할 전망이다. 석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폴리머를 재료로 하는 플라스틱의 경우 생산 폐기 등의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뿜어낼 수밖에 없다.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를 앞두고 플라스틱 생산단계서부터 감축이냐 재활용이냐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환경단체들은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해양오염 문제와 온실가스 배출을 막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생산자체를 줄이자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고 있다.

INC-5는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마지막 회의다. 플라스틱의 생산·사용·소비 등 전 생애주기에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회의다. 성안은 협약의 초안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합의된 문서를 만드는 일이다. 통상 성안 뒤 서명 비준 등의 과정을 거쳐 협약이 발효된다.

25일 부산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를 앞두고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이 10월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플라스틱 피로도 결과 발표 및 시위행위 장면.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플라스틱을 적게 쓴 국가가 더 많은 피해 부담 = 논문 ‘2050년까지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해결방안’에서는 전세계를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지역 △중국 △유럽연합(EU)과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등 EU 30 △나머지 다수 세계 등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눠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 폐기물 관리 현황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20년 연간 전세계 플라스틱 소비량은 547Mt에 달했다. 이 중 86%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신재) 플라스틱이었다. 재활용 플라스틱은 14%에 불과했다. 플라스틱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은 중국으로 36%였다. EU 30과 북미가 각각 18%를 차지했다.

이 연구에서는 중국의 플라스틱 소비량이 2030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미나 나머지 다수 세계의 총 플라스틱 소비량은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20년 425Mt으로 분석됐다. 이 중 39%가 매립지에서 처리됐다. 24%는 소각 처리됐고 재활용은 22%에 불과했다. 2050년 전세계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20년 대비 62% 증가할 전망이다.

2020년 플라스틱 생산, 전환 및 폐기물 관리로 인해 배출된 온실가스 양은 약 2.45Gt CO₂e이다. 이는 전세계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5%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구진은 과거 물질흐름 자료와 인구나 경제동향 등 사회경제적 자료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반 모델을 개발하고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2050년까지 전망을 예측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노천 투기나 소각과 같은 불법적으로 관리되는 플라스틱은 포함되지 않았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반복적인 무작위 표본 추출을 통해 다양한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구하는 알고리즘의 한 유형이다. 인공지능 연구 분야 중 하나인 머신러닝은 인간의 학습 능력과 같은 기능을 컴퓨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술이나 기법이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로 인한 부담이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가장 적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지 않은 국가에 불평등하게 전가돼 문제”라며 “플라스틱 생산 제한과 같은 상위 단계에서의 개입을 통해 잘못 관리되는 폐기물을 줄이는 정책이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 감소 효과를 거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환경단체들 “생산단계부터 감축” =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INC-5를 앞두고 플라스틱 생산 단계서부터 감축을 요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8일 지구의벗(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 FOEI)과 환경운동연합은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홀에서 ‘구속력 있는 국제플라스틱 협약을 요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지구의벗은 세계 3대 환경단체 중 하나다.

15개 환경단체가 모인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는 23일 부산 벡스코 일대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요구하는 시민행진을 할 계획이다.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에는 그린피스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녹색연합 동아시아바다공동체오션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알맹상점 여성환경연대 자원순환사회연대 등이 함께 한다.

이들 단체는 “플라스틱 재활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재활용이 가능한 횟수는 매우 제한적이며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플라스틱 내에 있는 독성 물질 처리 문제를 위해서는 생산 감축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환경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은 미세 플라스틱과 나노 플라스틱 등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분해되면서 수많은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달아 나온다. 또한 암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질병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제 학술지 ‘종합 환경 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의 논문 ‘인체 조직 내 미세플라스틱 축적과 잠재적 건강 위험’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 축적량이 가장 높은 곳은 폐 조직이었다. 이외에도 최근 몇 년 동안 정액 대장 태반 대변 가래 혈류 등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연구들이 잇달았다.

물론 이들 연구 결과가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 조직의 손상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플라스틱이 생산-소비-재활용 등이 되는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관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건 기본이다.

플라스틱은 현대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소재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발명품이다. 가볍고 쉽게 썩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특성은 인류에게 여러 혜택을 선사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물성이 도리어 독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다. 인간이 만든 편리함이 부메랑이 되어 인류 생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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