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한국수력원자력 공동 기획 | ‘에너지, 교과서 밖으로 나오다’
우리집 전기·가스요금 분석 후 에너지 절감방안 제시
실천적 에너지 리더 고등학생 양성, 올해로 6년째 … 탄소중립 학습 후 실천
올 여름은 유독 무더웠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후 전국 평균기온이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9월까지 최장 열대야를 겪었다. 더위 폭우 홍수 등 극한 기후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급격한 기후 변화의 주된 요인은 온실가스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시절 대비 2℃ 이하로 유지하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2℃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탄소중립이 필수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량이 흡수량과 균형을 이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해 인간활동에 의한 배출량은 최대한 감소시키고 탄소포집 및 저장 기술(CCUS)이나 산림을 이용한 흡수량은 증대시켜야 한다.
‘고등학생 에너지 리더 양성 과정’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내일신문이 공동으로 기획해 2018년부터 6년째 이어오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춘 전문정보를 고교생들에게 제공하고 탄소중립 필요성을 미래세대 주역들에게 강조하는 활동이다.
올해는 서울 상일여고 선덕고 세화여고 한대부고와 경기 남양주다산고 양명고 퇴계원고 등 총 7개 고교에서 ‘에너지, 교과서 밖으로 나오다’라는 주제로 에너지 데이터 교실을 개최했다.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는 “교과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삼아 심화 탐구과제를 탐색하는 교내 캠프 중 하나로 에너지 데이터 교실을 열었다”며 “학교 밖 전문가들로부터 현장 경험과 최신 정보를 접하고 자기개발을 향한 동기부여를 받으니 프로그램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오를 일만 남은 전기와 가스 요금 = 1982년부터 2021년까지 소비자 물가는 303.1% 상승했지만 전기요금은 46.1% 오르는데 그쳤다.
국제에너지 가격 등 원가는 급등했는데 그만큼 전기요금을 올리기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용을 제외한 주택용 교육용 농사용 등 전기요금은 원가에도 못 미친다.
한전 입장에서는 전기를 팔수록 손해보는 구조가 장기간 지속됐다. 그 결과 2021년 2분기부터 누적된 한전의 적자는 올해 3분기말 기준 37조6906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부채는 204조1248억원으로 불어났다.
가스공사의 민수용 미수금은 2021년 1조8000억원에서 올해 3분기 현재 13조9000억원으로 치솟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스공사는 가스를 구입한 가격보다 싸게 팔면 차액만큼 미수금으로 책정한다. 사실상 부채 성격이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을 고려하면 앞으로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똑같은 양을 쓰더라도 내야 할 냉방과 난방 요금 부담은 점점 커진다는 뜻이다.
◆교과 내용에서 확장한 탄소중립 교육 = 겨울철 난방을 앞두고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이 요구되는 지금, 지난 1일 세화여고에서 2024 에너지 데이터 교실 1일차가 열렸다.
강의를 맡은 김재민 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 대표는 기후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기후변화는 일어나고 있지만 정말 지구 종말까지 갈지 알 수 없다” “실제보다 과장된 것 같다” “머지않은 시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판단을 얻은 근거는 방송과 뉴스, 유튜브 등이었다.
김 대표는 “올해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녹색 성장 기본법이 시행됐다”며 “교실 밖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을 교과 지식과 연계시켜 미래에 일어날 일을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파악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외부 정보에 의존하던 관행을 버리고 자신의 손으로 데이터를 직접 취합하고 분석해보자는 것이 고등학생 대상 에너지 데이터 교실을 연 취지다.
◆우리 집 3년치 냉난방 요금 파악 = 아파트에서 가장 큰 소비가 일어나는 에너지는 계절에 따른 냉방과 난방, 즉 에어컨을 쓰는 전기와 도시가스 회사로부터 공급받는 가스로 나눌 수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면 건축 구조적으로 단열을 강화해야 한다. 온수를 끓이는 급탕과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가정 전력은 거주자의 생활 패턴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대량 절감 효과를 가져오기 쉽지 않다.
추울 때 따뜻하게 지내고 더울 때 시원하게 보내려면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이 필요하다. 아파트에서 열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몫을 크게 차지하는 요소가 창문이다.
창문의 면적과 열 관류율, 태양열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차폐 계수가 단열에 영향을 미친다. 그 외 냉난방기의 공조와 제어방식, 폐열 회수장치, 내부 발열 등이 에너지 요금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자신의 가정에서 소비한 3년치 전기와 가스 요금을 파악해 에너지 절감 방법을 구하기로 했다. 전기요금과 관련된 서비스를 찾아보는 한전ON에서 3년치 전기 요금을, 거주하는 지역의 도시가스 회사 홈페이지에서 3년치 가스요금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2일차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탄소배출 절감을 가상 프로그램으로 확인 = 7일에는 2일차 수업이 열린 선덕고를 찾았다. 학생들은 1일차에 들었던 이론 교육을 바탕으로 건물의 냉난방 에너지 소모량을 베스타 프로그램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배웠다.
먼저 샘플 데이터가 베스타에서 어떻게 응용되는지 강의를 듣고 난 후 수집한 데이터를 베스타에 입력해 나온 결과로 경제성을 찾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박성준 학생은 “3년치 에너지 소비량을 입력해보니 계절에 따른 전기와 가스 소비량 차이를 알 수 있었다”며 “그래프로 나온 데이터를 보니 겨울보다 여름에 우리집 에너지 소비량이 서울시 평균보다 많았고, 에어컨 가동량이 매년 늘어나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엑셀 프로그램의 회귀 분석을 이용해 냉난방 에너지와 온도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작업도 수행했다. 하성조 학생은 “회귀분석을 사용해 보니 온도와 에너지 사용량과의 상관관계가 유의미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우리 집에서 불필요한 냉난방 에너지 손실은 없었음 또한 확인했다”고 말했다.
베스타를 활용해 열효율이 더 높은 조명과 창호로 바꾸고 폐열 회수 장치를 추가하는 등의 활동을 가상해볼 수 있다.
박현준 학생은 “가능한 개선사항을 베스타에서 실행해보니 우리 집 총 에너지 소비량을 43%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8.5% 감축할 수 있었다”며 “가구 단위에서 바꿔볼 수 있는 실천 사항을 찾아보니 창호 교체만으로 에너지 소모량을 28.1% 줄이는 게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가구 단독으로 폐열 회수장치를 설치하거나 난방공급 방식을 바꾸는 것이 힘들지만 창호는 가구 단위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실천 가능한 에너지 절약을 발견하고 개선 후 냉난방 요금 절약과 온실 가스 배출량 감소를 확인했다.
◆고지서로만 보던 내용이 흥미진진 = 문제 발견 및 정의→ 데이터 수집→ 데이터 분석→ 쟁점 이슈 발견→ 해결 방안 도출로 이어지는 과제 수행 과정에서 학생들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집에서 몰랐던 점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다. 고지서로만 봤던 전기와 가스요금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며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동참할 구체적인 방안도 실습을 통해 찾아냈다.
학생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느꼈다. 박현준 학생은 “여름비가 동남아의 스콜처럼 변하는 것을 보며 미래환경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느낀다”며 “서울시립과학관에서 초등학생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데 기후변화 이슈에 대해 자세하고 깊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손희승 리포터 sonti1970@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