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연간 ‘100만명 폐업’

‘유통공룡’ 플랫폼에 자영업자 ‘골목상권’ 초토화

2024-11-22 13:00:43 게재

유통경로 장악, 입점업체에 높은 수수료·배달료 부과 … 소매유통 주도하던 대형마트도 ‘지리멸렬’

최저임금 인상(2018년) 코로나19(2020년) 고물가·고금리·고환율(2023년) 내수부진(2024년)까지. 자영업자들은 이번 위기만 지나면 좀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으로 버틴다. 하지만 한고비를 넘기면 또 따른 위기가 눈앞에 찾아온다. 개중에는 잇단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는 자영업자도 있다. 최근 그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유통 플랫폼의 급성장이 불러온 위기는 자영업자들을 회생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나 배달비가 주범이라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여기에 거대 물류창고를 갖추고 초저가로 매입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일부 플랫폼의 불공정한 행태는 골목상권을 초토화 시키고 있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안 쓰면 망하고, 쓰면 적자”라는 푸념이 일상화됐다.

<편집자주>

#.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40대 워킹맘 A씨는 2년 전 이맘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피자 프랜차이즈 창업에 뛰어들었다. 홀 손님은 받을 수 없었으나 배달수요가 늘어 장사가 잘되는 달엔 500만~600만원씩 손에 쥘 수 있었다. 주말도 공휴일도 없이 몸을 갈아 넣었다. 지난 3월 배달 플랫폼이 무료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배달비 부담이 A씨 가게로 전가됐다. 무료배달 범위가 옆 동네까지로 넓어지면서 같은 프랜차이즈 사장들과 출혈경쟁을 하게 됐다. 매출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수익이 30% 가까이 급감하면서 장사를 할수록 적자가 쌓였다. A씨는 결국 가게를 폐점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폐업해야 하는 현실은 비단 A씨 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장기화되고 있는 내수부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온라인쇼핑 급성장이란 상황이 결합하면서 오프라인 기반의 이른바 ‘골목상권’이 초토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 감소에 고용보험까지 해지 = 22일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신고를 한 개인과 법인 사업자는 전년(86만7292명)보다 11만9195명 증가한 98만6487명으로 집계됐다. 200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많다. 업종별로 보면 소매업이 27만6535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비스업(21만7821명) 음식업(15만8279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이른바 ‘골목상권’ 대표 업종들이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폐업을 이유로 실업급여를 받은 자영업자가 2527명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277명보다 250명(11.0%) 증가했다. 직원이 없거나 50인 미만인 사업주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은 이를 ‘마지막 보루’라 부른다. 하지만 줄어든 수입에 고용보험을 해지하는 사례도 늘었다. 오세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보험 해지 건수는 2019년 6404건에서 지난해 1만2270건으로 2배 증가했다. 특히 같은 기간 보험료를 6개월 연속 납부하지 못해 해지된 건수도 1339건에서 2848건으로 늘었다.

오 의원은 “고용보험은 실업 상태에 놓인 사람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사회안전망 제도”라며 “고금리와 내수 부진 속에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들이 보험료조차 내지 못하고 고용보험 강제 해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폐업 상점에 각종 고지서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대형마트 진입 시절보다 충격 커 = 전문가들은 이런 자영업자 위기가 코로나 이후 불어 닥친 내수부진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소매유통시장 생태계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하는 자영업자들이 설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매유통시장에서 온라인쇼핑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대형 유통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과거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에 진입하던 시절보다 충격이 훨씬 크다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다. 심지어 과거 소매유통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대형마트도 플랫폼에 주도권을 넘긴 지 오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점포수는 2019년 6월 407개에서 올해 5월 기준 372개로 감소했다. 온라인쇼핑, 대형마트,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 등 주요 유통업체 중 대형마트 매출 비중은 2014년 27.8%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12.7%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온라인쇼핑의 매출 비중은 28.4%에서 50.5%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이제는 대형마트가 온라인쇼핑과 관계에서 오히려 휴무일, 영업시간 규제 등으로 역차별을 당한다고 호소하는 실정이다.

◆추가비용 발생하고 정산기간은 늦어 = 대형마트가 이런 상황이니 소규모 자영업자의 형편은 말할 것도 없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배달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 않으면 매출이 감소한다. 숙박업 매출의 60% 이상이 숙박앱에서 발생한다.

동종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플랫폼에서 소비자 눈에 잘 띄려면 홍보비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 또 매출에 비례해 판매 수수료도 증가한다. 일부 플랫폼에 입점한 자영업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도 많은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안 쓰면 망하고, 쓰면 적자”라는 푸념이 일상화됐다.

부산에서 닭가슴살과 떡 등 식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김홍민 사장은 “상품이 노출 안 되면 불안한데 플랫폼은 이걸 자극해 경쟁시키고 더 많은 광고비를 내도록 유도한다”며 “(입점업체가) 저비용에 입점할 방법이 있어도 등록기준이나 절차 등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닭가슴살 판매가격이 1200~1300원인데 플랫폼 검색키워드 한 단어 클릭당 광고비는 5000~6000원 빠져나가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광고를 할 수 없다”면서 “게다가 플랫폼의 판매 수수료도 너무 높다”고 말했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그러면 경쟁력을 잃어 쇼핑몰에 입점할 수 없다는 말이다. 김 사장은 결제 정산기간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판매가 이뤄지면 일주일 만에 정산해 주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80일 이후에 정산하는 대형 플랫폼도 있다. 그는 티몬·위메프 사태로 5000만원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시장침탈’ 상황 비판 나와 = 입점업주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과거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시절만 해도 불공정 정도가 논란거리였다. 일부에선 온라인쇼핑 덕분에 창업이 쉬워지고 비용 감소와 직거래로 이윤이 증가할 것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하지만 거대 물류창고를 갖춘 플랫폼이 초저가로 매입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며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기간이 없거나 반영구적인 상품을 취급하는 철물점은 상대적으로 폐업률이 낮은 대표적 업종으로 꼽혀왔다”면서 “하지만 클릭 한 번에 플랫폼 기업이 직접 판매하는 소량의 못이나 3000~4000원짜리 펜치 한 개도 당일 배송 받을 수 있는 지금 누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도 “대형 플랫폼은 우리 같은 중소상공인들이 키워준 것인데 자리를 잡고 나니 빼앗아 가기만 하지 우리에게 나눌 줄 모른다”면서 “시장지배력이 생기자 인기 품목에서부터 자사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상품을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훨씬 유리한 조건의 플랫폼이 자신의 입점업체를 고사시키는 사실상 ‘시장침탈’ 상황이란 비판이 나온다.

◆자구책 고민하지만 반전에는 실패 = 일부 자영업자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T) 격차와 이미 독과점 수준으로 장악된 시장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김 사장은 “정부는 전통시장에 오프라인 판매가 안 되니 통신판매를 유도했다”면서 “하지만 제품 생산만으로도 바쁜 상인들이 빠른 시장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소매점을 운영하는 김진철 대표(전 망원시장상인회장)와 주변 상인들은 유통 대기업과 함께 ‘시장 앱’을 만들어 운영한 경험이 있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대기업이 상생하자고 했다”며 “하지만 1년이 안 돼 ‘적자가 난다’면서 1~2%였던 수수료를 5~10%까지 올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높은 수수료로 인한 비용 부담으로 사업을 접었다”고 밝혔다.

◆“회복불능 상태 빠질 수도” = 문제는 소비 세대 변화와 IT·물류시스템 발전으로 플랫폼 성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는 통계청 소매판매액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 10년간(2014~2023년) 소매시장 변화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소매시장 규모는 509조5000억원(경상금액)으로 10년 전인 2014년 382조3000억원에 비해 33.3% 증가했다.

업태별 시장점유율을 보면 무점포소매가 2014년 11.8%에서 2023년 25.7%로 117.8% 증가했고 편의점(82.7%), 면세점(24.2%)도 성장했다. 반면 전문소매점(△27.4%) 대형마트(△16.4%), 슈퍼마켓·잡화점(△14.4%)은 시장점유율이 줄었다.

최근에는 해외직구 플랫폼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으로 대표되는 해외직구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는 식별부호인 통관고유부호 누적 발급건수가 2544만건을 넘어섰다. 2019년 1377만건에서 5년 사이 2배가량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일상회복 영향으로 잠시 주춤했던 플랫폼 성장세에 다시 가속도가 붙었다”면서 “온라인 구매 경험이 있는 인구가 증가하면 오프라인 유통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자영업자들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온플법 제정 요구 확산 =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년째 논의 중인 ‘온라인플랫폼 거래공정화법’(온플법) 제정이 대표적인 요구다. 온플법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를 제재하겠다며 처음 제기했다.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소규모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불공정 행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플랫폼에 입점한 업체에 과도한 수수료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상품·서비스 노출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하는 행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공정위는 이듬해 1월 법안을 냈고 정부와 여당이 힘을 실었지만 법 제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윤석열정부 시각은 달랐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플랫폼 자율 규제’ 방침을 강조했다. 공정위는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온플법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안’을 보고했다.

공정위는 지난 9월 자영업자들의 기대에 못미치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 단체 등은 “정부가 거대 독점기업에 굴복해 민생경제를 외면하고 독점규제를 포기했다”며 “반쪽짜리 플랫폼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논란을 반복하던 온플법이 최근 수면위로 다시 부상했다. 티몬·위메프 사태로 수많은 자영업자가 홍역을 치른데다 최근에는 배달플랫폼과 입점업체 사이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회에 잇달아 온플법이 발의됐다. 특히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이 온플법 제정에 드라이브를 걸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은 대부분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해 계약 내용과 방식, 효력을 규제하고 특정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대표는 “우리 같은 소상인들은 자체 배송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며 “시장을 관리해 줄 사람이 없고, 관리자도 두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같은 상황이면 5년 후에는 전국 전통시장의 1/3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김 대표는 “대기업보다는 힘없는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상생하기 위해 대기업과 유통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세풍 박광철 이재걸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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