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AI 디지털 교과서’에 부는 역풍

2024-12-02 13:00:07 게재

내년 3월 도입 예정인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가 수난을 겪고 있다. 교과서 지위를 잃을 위기에 놓이면서 정부 정책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도입 시점을 2025년으로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속도전이 역풍을 불렀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AIDT 교과목 재조정과 속도조절 계획을 밝혔다. 조정안에 따르면 2025년 3월부터 초3·4, 중1, 고1의 영어·수학·정보 교과목에 AIDT가 전면 도입된다. 다만 초등학교 국어·실과, 중등학교 국어·기술·가정, 고등학교 국어·실과, 특수학교 생활영어·정보통신이 적용에서 제외된다. 이들 과목은 2026~2028년 사이 도입될 예정이었다.

공론과정 생략한 속도전으로 논란 자초

하지만 AIDT 도입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교과서가 아닌 자율선택할 수 있는 교육자료로 보는 법안이 관련 상임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AIDT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교과용 도서의 정의와 범위를 서책과 전자책으로 제한하고 AIDT와 같은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했다. 교과서는 모든 학교에 채택 의무가 있지만 교육자료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교육부는 “AIDT는 현행 법령에 따라 교과서의 지위로 개발·검증됐다”며 “내년 3월 학교현장에 잘 안착될 수 있도록 교원 연수, 디지털 인프라 개선 등 많은 준비가 진행돼 현 시점에서 법적 지위가 변동되면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육자료는 ‘초·중등교육법’ 상 무상·의무교육에 따른 지원 대상이 아니어서 학생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며 “교육자료의 사용도 시도별·학교별 재정 여건 등에 따라 차이가 나타날 수 있어 교육 및 학습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DT가 수난을 겪게 된 배경에는 충분한 합의없이 밀어붙인 교육부의 일방통행이 자리잡고 있다. AIDT에 대해서는 그간 교육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우려가 제기돼 왔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섣부르게 도입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과몰입 문제, 문해력 저하 논란, 개인정보와 보안 문제 등과 함께 AIDT 완제품 완성이 늦어지고 막대한 예산 논란이 이어졌다.

AIDT 도입 유보를 촉구하는 국회의 국민청원이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6월 국회 교육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강력한 반발이 이어졌다. 교육계 인사는 “새로운 사업이 도입될 때 시범사업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데 너무 서두르다 반발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했다. 100년 뒤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도 부족한데 당장 필요한 교육정책을 마련해 수정해나가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의 “시범학교를 선정해 효과를 검증하고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야당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 재의결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AIDT는 교과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사회부총리가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두고 ‘악법’이라고 규정한 것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고려한 수순으로 보인다.

공교육 혁신의 촉진자 역할 다해야

이렇게 되면 검정을 통과한 AIDT는 다음달부터 일선 학교의 선정 절차를 거쳐 내년 1학기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수업에 사용된다. 교육부는 학교현장에서 AIDT 도입 뒤 수포자·영포자가 줄었다는 평가를 얻도록 준비를 다해야 한다. 정식 활용 전 2~3개월간 검정을 통과한 AIDT 시범적용을 통해 발생가능한 문제점을 점검하는 등 학교 현장에 문제없이 도입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한명의 교사가 많은 학생을 가르치는’ 대량교육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AIDT 도입은 개별 학생의 수준과 개성을 반영한 일대일 맞춤형 교육 실현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내년은 완전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등 공교육 혁신의 원년이다. AIDT가 고교학점제와 함께 공교육 혁신의 촉진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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