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전력기기, 유럽 - 최고급 저탄소 제품 시장 공략”
트럼프 2.0시대, 탄소감축-경제성장은 어떻게?
과학 기반 국가탄소감축목표 …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이·공학은 기본, ‘휴먼 사이언스’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지난달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막을 내렸다. 회의 성과 논란을 떠나 당장 내년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제출 시한이 임박해짐에 따라 당사국들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다. 2019년 이후 세계 주요국들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기준연도 대비 균등 감축 수준으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하는 분위기다.
11월 29일 정은해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은 “시간에 쫓겨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만들다 보니 사회적 혹은 경제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2050년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손실 규모가 1.8~17.3%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한국은행)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문제이므로 폭넓은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11월 29일 한국환경한림원이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연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점검 및 중장기 방향’에 참석한 정 센터장은 “우리 여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좋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하고 그다음에 남 탓하자”고 강조했다.
◆단기 위험 대응, 중장기 기회 요인도 함께 고려 =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0%까지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이는 연평균 감축률 4.17%를 달성해야 하는 수치다. △유럽연합 1.98% △미국 2.81% △캐나다 2.19% △일본 3.56% 등과 비교했을 때 도전적인 과제인 건 분명하다.
사실 우리나라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은 기후위기 대응에 적신호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기후변화는 사기’라며 부정하는 입장이 강하다. 이번 대선에서도 10대 공약별 세부 항목들에 기후나 환경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분위기는 트럼프 당선인과 관계없이 종전대로 한다는 국가와 이번 기회에 느슨하게 접근하려는 국가들로 나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적인 위험 요소에 대응하고 기후변화라는 중장기적인 기회 요인을 함께 선점할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어렵지만 우리에게 어떠한 기회요인이 있을지 정확하게 분석하고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제품 점유율이 저조한 미국 시장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기기 부문을 우리가 파고 들어가면 승산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력기기 부문에서 상당한 우위에 서있지만 중국에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게다가 미국은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인공지능 등으로 전기 공급량을 확 늘릴 방침으로 알려졌다. 전력기기 부문에서 우리가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는 또 “친환경 규제가 심화하는 유럽연합 시장에서는 최고급 저탄소 제품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며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기후투자가 위축되고 국제사회의 기후대응 추진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단기적일 확률이 높으므로 중장기적인 기회 요인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 행동이 변하면 탈탄소 비용 부담도 줄어 = 우리나라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또하나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가 지난 8월 대한민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담은 현행법이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는 점이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아 2050년 탄소중립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미래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031~2049년 기간 동안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법률에 규정할 때는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에 부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담았다.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써야 한다. 에너지 사용은 온실가스 배출과 직결되는 문제로 저탄소 산업구조로 전환하지 않은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경제적으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 시 그 어느 때보다도 과학적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의미를 좀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태용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7차 평가보고서(AR7)’에서는 휴먼 사이언스에 대한 검토나 연구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동이 변화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성으로, 최근 인간의 행동에 대해 연구를 하겠다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사람의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건 경제적 비용이 굉장히 적다”며 “휴먼 사이언스에 대한 연구나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고민을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인에게 떠넘기는 거라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정 교수는 “기후위기 대응하면 자연과학이나 공학적인 접근만을 생각해왔다”며 “이제는 보다 폭넓은 분야에서 함께 적극적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선을 그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