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윤석열 대통령 ‘자진사퇴·탄핵’ 동시 추진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위헌, 다시 없으리란 보장 없어”
민주·혁신당, 이르면 오늘 탄핵안 발의, 5일 의결 검토
2시간 계엄사태로 ‘탄핵 추진 역풍’ 사라졌다 판단한 듯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이르면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발의를 준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 탄핵 움직임과 거리를 뒀던 민주당이 본격적인 탄핵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당은 4일 새벽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연 뒤 “윤 대통령이 자진해 사퇴하지 않으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결의문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비상계엄) 선포(에 필요한 어떤) 요건도 지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원천 무효이자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며 “이는 엄중한 내란 행위이자 완벽한 탄핵 사유”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윤 대통령의 헌정 파괴 범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윤 대통령은 즉각 자진해 사퇴하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지 않으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온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이 자진사퇴를 전제로 내걸었지만 야당 의원들은 즉각적인 탄핵 절차 돌입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르면 4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이번주 중 국회 본회의에서 보고된 후 의결까지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향후 비상계엄이 다시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때문에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계신다”며 “빠르게 탄핵소추안을 내서 보고하고 의결하는 과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시간표는 오늘(4일) 탄핵소추안 발의, 5일 국회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뒤 의결”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또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과정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국방부 장관에 대한 책임추궁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조국혁신당이 탄핵소추안을 마련해 야당 의원들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할 공산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조국혁신당 관계자는 “탄핵소추안을 마련했고 민주당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면서 “국민의힘에서도 탄핵소추에 동참하는 의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안 의결에는 국회 2/3(200석)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앞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의원 40여 명이 모여 지난달 출범한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연대’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정농단 내란 수괴 윤석열을 탄핵하자”고 주장했다.
모임의 공동대표인 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사실상 내란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며 “한시도 대통령 직책에 둘 수 없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에 급하게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 당이 신속히 협의해 오늘 중으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탄핵안 발의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이를 가결해야 하므로 가장 빠르게 탄핵안을 가결해 대통령의 직무를 즉각 정지시키는 데 국회가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핵추진위 활동을 진행해 온 조 국 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는 그 자체로 군사 반란에 해당하므로 즉각 수사가 가능하다”며 “국회는 탄핵소추에 즉각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공동대표인 민주당 박수현 의원도 “‘탄핵의원 연대’는 처음 가졌던 마음 그대로 탄핵안을 가결하고, 윤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길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그간 윤 대통령에 대해 비판공세를 이어가면서도 탄핵이나 퇴진 등의 직접적 언급을 피했으나 이번 비상계엄 선포로 역풍의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보고 보다 공세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 실질 요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불법·위헌”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위기는 곧 기회”라며 “이번 불법·위헌의 계엄 선포로 인해 더 나쁜 상황으로 추락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상사회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오늘 중 윤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하고 죄를 자청해야 한다”며 “만일 거부한다면, 분노한 국민들 손에 용산에서 끌려 내려오는 것이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8월 김용현 국방부 장관 내정을 놓고 현 정권의 ‘계엄 시도’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의 과거 발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8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으로의 갑작스러운 교체는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권은)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기 바란다”며 “계엄령 준비 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이 ‘괴담선동’이라며 반발했지만 김 최고위원은 9월 정부가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계엄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명환 박준규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