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정치는 4류 맞다. 그러면 기업은?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1995년 4월 13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 베이징 발언 후 29년이 흘렀지만 정치는 여전히 4류다.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했다. 이 상황만 보면 ‘4류’라는 등급도 분에 넘친다. 그 여파로 한국경제는 요동치고 있다. 환율은 뛰고 주식선물은 급락했다. 원 달러 환율이 2년여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고환율은 물가상승을 부추긴다. 한국은행은 환율이 1400원을 상회하면 12월 이후 물가가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3개월 연속으로 1%대를 기록한 물가상승률이 다시 2% 부근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졸지에 한국이 ‘여행위험 국가’가 됐다.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는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비자 발급 등 영사업무를 중단했다. 대사관 직원의 재택근무도 확대했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조차 한국이 위험한 상황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번 비상계엄은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줬다. 세계에 한국 정치·사회의 불안정성을 확실하게 광고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지도자라는 사람이 앞장서 불확실성을 키웠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뜩이나 사면초가 상태인 한국경제에 카운터펀치를 날린 셈이다.
한국경제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데 기업들은 뭐하고 있나. 경제정책과 제도에 대해 한국경제를 걱정하며 사사건건 성명서를 내놓던 경제단체들이 현재 침묵중이다.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소위 경제5단체는 아무말이 없다. 경제5단체는 현 상황을 크게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비상계엄을 경제상황과 무관한 정치문제로 바라보는 듯하다.
특히 중소기업 맏형인 중소기업중앙회 태도는 더욱 이해가 안된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가장 먼저 피해보는 약한 고리는 중소기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기중앙회는 야권과 시민사회의 비난에도 최저임금 인상 반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에 앞장서왔다. 지난 총선 기간에는 선거개입 우려를 감내하면서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는 전국 순회집회를 주도하고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경제단체는 ‘기업’을 대표한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2류’는커녕 정치와 똑같은 ‘4류’로 전락한 것 같다. 한국경제 부활을 위해서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시대흐름을 직시하지 않고 자기 주머니만 계산하는 집단으로 남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형수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