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있는 퇴진’? 시민사회 “자격·근거 없다”
비상시국회의 “한·한 체제, 또 하나의 국정농단”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무산시킨 국민의힘이 내세운 이른바 ‘질서있는 퇴진’론을 놓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일제히 비판·반대 성명을 쏟아냈다. 헌법적 근거도, 자격도 없다는 것.
전국비상시국회의는 9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시국 기자회견을 연다.
비상시국회의는 앞서 이날 오전에 “다시 비상시국임을 선언한다”는 제목의 회견문을 공개하고 윤 대통령 탄핵과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했다.
이들은 “내란 수괴 윤석열을 내란 현행범으로 추상같이 단죄하기는커녕 탄핵소추안과 김건희 특검안을 부결시킨 국민의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내란 수괴를 구하기 위해 헌법과 민주주의, 국가와 국민을 외면하고 배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동훈과 한덕수의 이른바 ‘한·한 체제’의 출현은 최순실 당시를 능가하는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또 하나의 국정농단에 다름 아니다”며 “헌법을 위시한 법제도의 어디에도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조항과 근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비상시국회의는 “무엇보다도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윤석열 퇴진 범국민적 항쟁기구가 시급히 결성되어야 한다”며 “구체적 방안으로 그간 윤석열퇴진투쟁에 앞장서 왔던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준)’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열과 조직태세를 기민하게 정비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앞서 8일 참여연대는 ‘한동훈은 국정을 운영할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부여당의 퇴진론을 반박했다.
참여연대는 “근본적으로 한동훈 대표에게는 윤석열의 직무를 배제하거나 국정을 운영할 자격은 물론,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한덕수 국무총리 또한 내란을 방조한 공범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사람이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것은 헌법에 근거하지 않은 또 다른 의미의 내란일 뿐”이라며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대책을 철회하고, 윤석열 탄핵소추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에 수습책을 일임하겠다는 전날 윤 대통령의 담화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받은 권한은 헌법상 사유로 직무가 정지될 때에만 헌법 규정에 따라 대행될 뿐”이라며 “대통령도 임의로 그 누구에게 그 권한을 위임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한동훈 당대표는 오늘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외교 등 직무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를 실현할 헌법적 근거나 법적 근거는 없다”고도 꼬집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같은 날 ‘누가 질서 있는 퇴진의 권한을 한동훈 대표에 줬나?’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헌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위헌적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 권한을 당 대표나 특정 정당에 위임할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일임’이라는 선언도 언제든지 권한을 회수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짚었다. 이어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일임하겠다는 담화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이를 지키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는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적 행위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선언하지 않는 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실련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내란죄 적용을 통한 즉각 구속과 더불어 탄핵 절차를 신속히 추진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엄정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국회의 탄핵절차 신속 재추진 △내란죄 관련 책임자 즉각 구속수사 △국민의힘 정권유지 시도 중단 △특검을 주장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