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추락한 신뢰, 외교안보정책 전환 불가피

2024-12-17 13:00:01 게재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그리고 이에 대한 수사로 소용돌이치던 정국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향후 엄정한 수사를 통해 실체가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얘기만으로도 충격 그 자체다.

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서해상에서 K-9 자주포 200여발을 쏘는 과도한 포격 훈련 실시, 무인기의 평양 중심부 침투 및 전단 살포, 쓰레기풍선에 대한 원점타격 지시, 북한군을 가장한 군인들의 정치인 및 미군에 대한 공격 계획 등 기존 ‘북풍’급 사주를 넘어선 전쟁 기도의 조각들이 회자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 외교적 신뢰에 기반했던 역대 정책의 기반이 순식간에 흔들리는 초유의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 국민은 물론 우방국, 국제사회에게 신뢰성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외교·안보정책과 대북정책에도 심각한 타격과 파급영향이 예상된다. 다극화 질서와 지역 분쟁의 격화, 북러동맹 및 북핵 고도화, 트럼프행정부 출범 등 국제 및 지역정세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이번 사태로 외교적 운신의 폭은 급격히 쪼그라들고 국정정상화 전까지 현안 대응에서도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2025년 우리 외교·안보·대북 관련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큰 굴절과 전환, 새로운 변화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북, 남한의 전쟁도발이나 국지전 유도 경계

우선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미치는 영향이다. 북한은 이번 사태에 대해 상황만 세차례 보도했을뿐 어떤 공식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실제 전쟁에 대한 우려다. 북한은 비상계엄 선포를 북침, 전쟁을 위한 사전조치로 보고 경계태세에 집중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총참모부 주관의 주요 지휘관회의를 개최해 동향 파악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혹여 있을 남한의 전쟁 도발, 국지전 유도 상황을 가장 우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한국과의 ‘단절’에 집중했던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며 휴전선 일대 방벽을 쌓고 철도·도로를 끊고 초소를 증설하며 경계를 강화하는 일련의 행보를 이어갔다. 남한과 전쟁에 휘말리거나 긴장이 조성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차단의 적극적 표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북한의 행동은 남한이 한 행동에 대해 비례적으로 유사대응을 하는 데 그쳐 확전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북한은 한국정부의 대북한 태도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을 발견했을 수 있다. 지난해 북한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한국정부는 9.19 남북 군사합의를 부분적으로 효력 정지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과의 국지전 긴장을 제어할 안전핀 제거가 맞대응 카드로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휴전선 일대 고정익·회전익 비행기의 공중정찰 활동을 금지했던 내용을 먼저 효력정지했다. 이후 올해 무인기 평양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을 국민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행위로 간주하면서도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않았다. 신속하게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원점타격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당시에도 사태를 진정시키고 긴장을 완화하기보다는 확전을 불사하는 즉·강·끝이 우선됐다. 지난달 27일에는 백령도에 배치된 해병대 6여단이 K-9 자주포 200여발을 쏘는 해상사격훈련을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이 연평도 해병대 K-9 자주포 해상사격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면 대규모 포격훈련의 배경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신뢰 잃어 향후 대북 대미정책 위축될 듯

향후 우리의 대북정책 대미정책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전쟁을 위협하고 있다는 북한의 계속된 주장이 사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박할 한국의 논리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북미 직접대화 속에 한국의 패싱도 노골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도 북한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북한과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에게 조차 사전 통보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한국에 대해 미국은 상당 기간 신뢰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북한과의 긴장과 전쟁을 유도했던 한국을 북미 대화의 틀에 넣어야 할 이유가 줄어들어서다. 북한이 그런 대화 구도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외교안보 및 대북정책 담당관료 인선을 마쳤고 출범 이후 북미대화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차기 국정체계를 갖추는 데 2025년 상반기를 고스란히 보내야 할 판이다.

결국 대북정책을 새롭게 마련하고 미국과 정책 조율하는 시점은 내년 여름 이후나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가닥이 잡힌 미국이 대북정책,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북미대화에 한국이 끼어 들 공간은 크지 않거나 없을 수도 있다. 결국 신뢰도를 다시 정상화하기 위해선 대북정책의 근본적 전환, 새로운 평화구상이 모색될 수밖에 없다.

홍 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