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불법적 명령에 항명할 줄 아는 민주군대를 바란다

2024-12-24 13:00:01 게재

지난 12월 3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치욕의 날이다.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에서 친위쿠데타가 일어나리라고 누구도 믿지 않았기에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가짜뉴스쯤으로 생각했다가 무장군인들의 국회 난입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날 밤 용기 있는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비상계엄은 정당성이 취약한 집권세력이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할 목적으로 활용해왔다. 안보와 질서유지를 명분으로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독재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정치적 계엄이었다.

12.3 비상계엄은 실패했지만 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위법하고 반헌법적인 명령에 단 한명도 항명하지 않고 동조한 점은 비극 그 자체다. 이들은 1500여명의 병력과 헬기 12대, 군 차량 107대, 실탄 1만발 이상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

위법한 명령에 항명하지 못한 군 지휘관들

군의 내란 가담은 ‘오늘날 제복 입은 민주시민은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배신행위다. 필자는 우리 군이 퇴행하게 된 배경으로 다음 두가지를 꼽는다. 첫째, 군사정권 출현 가능성이 사라지고 문민정부가 계속되면서 친위쿠데타에 대한 경계심 해이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윤석열정부의 권위적인 군대문화 복원과 무관하지 않다. 이 정부는 문민정부에서 소외됐던 특정군 출신을 군의 요직에 등용해 그동안 발전시켜온 민주군대의 가치와 내용을 대폭 축소, 변형시켰다.

대표적인 예로 국방정책 기조와 장병 정신교육 내용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윤석열정부는 ‘2023~2027 군인복무기본정책’을 개정하면서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삭제했다. 또한 장병 정신교육에서 민주군대의 군인정신 분야를 대폭 축소했다.

국방부가 2023년 말 개정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문재인정부에서 ‘군인의 명령-복종과 한계’에 대해 5쪽에 걸쳐 기술한 내용을 전부 삭제하고 “부하 군인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짧게 기술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개정판에 헌법 제5조 2항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지만 국방부장관을 비롯해 군 주요 지휘관들이 계엄을 주도하고 가담한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그런데도 계엄을 주도했던 국방부장관과 직간접적으로 동조, 내지 가담했던 군인들은 증거를 인멸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은폐·왜곡하는 등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국방부와 정치권은 “지시를 따른 군 관계자들은 잘못이 없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지금은 계엄의 전모를 규명하는 시간이지 용서할 때가 아니다. 책임의 경중은 사법적 판단에 맡기면 된다.

12.3사태의 원죄가 있는 국방부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작금의 국방부 행태를 보면 대통령 탄핵심판과 계엄 관여자들의 사법적 절차가 끝날 때까지 관련 지휘관들의 보직해임을 미루고 있다. 또한 장병들의 사고와 행위의 틀을 규정하는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 군인복무기본법, 군형법 등의 취약한 부분을 대폭 개선하고 교육에 반영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현재까지 12.3사태와 관련해 군인으로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교육하지 않고 있다. 지금 장병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군의 정치개입과 위법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군인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 제2의 창군 수준의 개혁조치가 필요하다. 그 핵심은 방첩사가 계엄 자체를 영구적으로 취급하지 못하도록 법적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특정 학교 출신들이 카르텔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3군사관학교를 통폐합 또는 폐지해 새로운 장교 양성과정 재정립에 중점을 둬야 한다.

정치군인 차단 위한 제2창군 수준의 개혁을

아울러 전문성과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문민 출신 국방부장관 시대를 열고 민주적 군대로 개조해야 한다. 특정 학교 출신들이 세력화하지 못하도록 객관적인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인사검증 및 진급체계 개선도 필수적이다.

우리 군은 영국 육군이 왜 ‘왕립(Royal) 해·공군’과 달리 대영제국 군대(British Army)인지를 반면교사로 삼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뼈를 깎는 각성을 통해 오직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민주군대로 거듭나길 바란다.

임명수 이화여대 특임교수, 안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