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박정희’에 두동강난 대구·구미
구미시민들 “노인들 여론만 의식”
동대구역 광장에서는 찬·반 집회
“맨날 정주여건 개선 외치면서 이런 공연을 취소하면 또 어떤 가수가 구미에서 공연하려 할까요? 늙은이들 여론 때문에 젊은 사람 다 대구로 내쫓네요.” “박정희 동상 반대!” “부국강병 박정희 정신을 이어가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구와 경북 구미 민심이 두동강난 모양새다. 구미시가 서울 여의도 집회에서 공연했던 가수 이승환씨 공연장 대관을 취소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 반발이 커지고 있다. 대구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구미시는 지난 23일 가수 이승환씨의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 공연장 대관을 취소했다. 김장호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25일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콘서트를 시민과 관객의 안전을 고려해 취소한다”고 밝혔다. 회관 운영조례 제9조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지만 속내는 정치적 이유다. 김 시장은 “기획사에 정치적 선동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이승환씨는 지난 14일 경기 수원 공연에서 ‘탄핵이 되니 좋다’는 정치적 언급을 했다”며 “이승환씨의 정치적 언급에 대한 지역 시민단체 집회가 지난 19~20일 두차례 열렸다”고 말했다.
이승환씨측은 “대관을 취소한 결정적 이유는 서약서 날인 거부”라고 반박했다. 이씨측에 따르면 구미시는 ‘관람객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인력 배치’와 함께 ‘정치적 선동 및 정치적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보내 기획사와 이승환씨 서명을 요구했다. 이씨는 “대관규정 및 사용허가 내용에도 없는 ‘서약서’ 서명을 계약 당사자도 아닌 출연자에게까지 요구했다”며 “대관일자가 임박한 시점에 제출하라고 한 것은 부당한 요구”라고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법적 대응 방침도 밝혔다. 이씨는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며 “일방적이고 부당한 대관 취소로 인한 법적·경제적 책임은 구미시 세금이 아니라 이 결정에 참여한 이들이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등은 이날 성명을 내고 “표현의 자유와 문화 독립성을 훼손한 결정”이라며 “안전상의 이유를 명분으로 사실상 정치적인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평가했다. “안전사고가 우려되면 시가 경찰 협조를 받아서라도 대비하면 되지 왜 공연을 취소하냐”는 시민들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날 동대구역 광장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둘러싸고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범야권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박정희우상화반대 범시민운동본부는 ‘박정희 동상 건립반대’ ‘박정희 우상화 반대, 홍준표 시장 규탄’ 등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홍준표 시장이 입장하자 일부 시민은 제막식장에 진입해 항의도 했다.
반대쪽에서는 구국 대구투쟁본부 등이 태극기를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박정희는 자유대한민국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얼과 부국강병 박정희 정신을 이어가자’는 현수막도 앞세웠다. 찬성 집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집회가 끝난 후 주최측은 길게 줄을 선 참석자들에게 떡과 커피를 나눠주기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축사에서 동상설치가 불법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2017년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으로부터 관리권을 이양받아 동대구역 광장을 조성해왔고 내년 초면 정산이 끝나 대구시 소유가 된다는 얘기다. 그는 또 “대구에는 3대 정신이 있는데 유일하게 산업화 정신 상징물이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 있지만 적어도 대구시민만은 공에 대한 평가를 잊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구시는 홍 시장 지시에 따라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14억원을 편성해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 등 재원을 마련했다. 내년에는 남구 대구대표도서관 공원에도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추가할 계획이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