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상생 사회연대
개별기업 넘어 산별 노사, 사회연대 다양하게 발전
간접고용노동자, 대기업 노사, 공공·금융·사무금융, 플랫폼노동, 산업안전보건 … ‘노동-시민사회 연대’까지
한국사회는 10대 90 불평등 사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사의 사회연대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개별기업 노사 또는 산별단위 노사가 참여해 임금격차와 차별적 고용관행 개선은 물론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지원, 중소기업 산업안전보건 지원 등 다양한 사회연대로 발전하고 있다. 노사의 사회연대 뿌리에는 ‘전태일 정신’이 있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22살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2009년 7월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현실을 바꿔내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의 삶과 정신은 기리고 실천하기 위해 ‘전태일재단’(이사장 직무대행 임현재)을 설립했다. 특히 하루 16시간을 일하며 배를 곯던 어린 시다들에서 자신의 버스비로 풀빵을 사서 나눠주던 ‘풀빵정신’이 오늘의 사회연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21년 8월에는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단결정신을 기려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이사장 최종인)을 설립했다. 두 재단은 전태일노동상 전태일문학상 시상과 풀빵나눔사업, 전태일·이소선 노동인권교육 등 다양한 사회연대사업을 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노사는 저소득층 보육환경 개선을 위해 23일 ‘노사 공동 특별 사회공헌기금 전달식’을 열고 전기차 23대 등 총 15억원 규모의 특별 사회공헌기금을 기증했다. 노사는 이번 기부를 위해 임직원이 올해 성과금에서 1만원씩 공제한 6억2800만원과 회사가 별도로 출연한 8억7200만원으로 사회공헌기금 15억원을 조성했다. 이 기금 가운데 10억원은 전국 18개 지역아동센터와 4개 다함께돌봄센터, 1개 아동사회복지관 등 23개 아동복지기관에 코나EV 차량을 1대씩 기증하는 데 쓰인다. 또한 노사는 기금 5억원을 울산 북구와 동구 지역 저출생 극복 돌봄 서비스 지원, 아동 돌봄센터 신설·리모델링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 대기업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미화노동자들이 20일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모아 사회단체에 연대기금을 전달해 눈길을 모았다.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새봄지부(새봄지부) 이대목동병원분회 조합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조합원들은 10월 사측인 에스텍에이스와 임금인상 합의를 하면서 노사는 조합원 1인당 5만원에 상당하는 금액을 새봄지부 이름으로 출연해 사회연대기금을 마련했다. 기금 사용처는 노조가 결정하기로 했다. 이대목동병원분회(분회장 김종성)는 이날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200만원)와 강서양천민중의 집(180만원)에 기금을 전달했다. 새봄지부 교섭을 총괄한 김경규 보건의료노조 전략조직위원장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인 새봄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양보해 사회연대기금으로 출연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대노총 공공분야 5개 노조 주도 기금 조성 =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개별기업을 넘어 산별노조의 사회연대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2017년 12월 한국노총 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 등 공공분야 5개 노조가 공공상생연대기금 재단을 설립했다.
2016년 박근혜정부는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시도했다. 양대노총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는 과도한 경쟁구조를 만들어 공공기관이 목적에 맞는 공공적인 역할보다도 실적 올리기에만 집중해 사회공공성을 저해한다고 반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 투쟁도 끝났다. 성과급으로 지급된 1600억원을 반납해 공익적으로 사용하자는 사회적 제안으로 공공상생연대기금이라는 재단이 설립됐다. 2024년 현재까지 전국 48곳 공공기관의 노사가 출연금 640억원을 냈다.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상생과 연대로 함께하는 건강한 노동존중 사회’를 미션으로 △사회적 격차 완화 △사회적 연대 △정의로운 사회 실현 △사회공공성 강화 등을 비전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지난 6년 동안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사업, 한국사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연구사업, 비영리단체와 함께 노동존중 문화를 확산하는 사업, 미래세대인 대학생들의 동아리 지원 사업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상생과 연대를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수행했다.
또한 한국사회의 개혁과 대안 담론을 위한 열린 공론장인 소셜 코리아 사업,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촉진을 위한 공공가치 어워드 사업 등을 진행했다.
노광표 공공상생연대기금 이사장은 “앞으로 격차와 균열, 대립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을 치유하고, 상생과 연대 그리고 공동선으로 영글어진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일구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33개 금융기관 노사, 국내외 약 19만명에게 도움 = 금융산업노사가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해 함께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산업단위 공익재단인 금융산업공익재단(이사장 주완) 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33개 금융기관 노사가 뜻을 모아 조성한 약 1850억원의 기금을 바탕으로 2018년 10월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출범했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은 출연금을 통해 서민·사회책임금융, 지역사회·공익, 글로벌, 환경, 학술·교육, 문화예술·체육 등 6대 사회공헌 영역을 선정해 사회가 금융산업에 요구하는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를 달성하기 위해 공헌활동을 전개해 국내외 약 19만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특히 금융산업공익재단은 금융 및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 및 자립 기반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취업 지원 및 자산형성 사업을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채무조정 미취업청년, 한부모가정, 북한이탈주민, 플랫폼노동자, 이주배경 청년·노동자, 자립준비청년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취업 컨설팅을 제공한다. 적금 가입시 불입액의 20%를 응원 매칭금으로 지원하는 등 경제적 자립도 돕고 있다.
금융지식 함양을 통한 건전한 소비 습관 형성과 합리적인 금융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초등 및 중학생 대상의 금융기초교육, 청년층 대상의 재무설계 교육, 고령층 대상의 디지털 교육 등 대상별 맞춤형 교육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포용금융사업’의 일환으로 금융권 제도 밖 대출이 필요한 대상자들을 위한 사회적 대출사업을 시작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주거복지기금 대출사업, 사회가치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 성장기금 대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교육·문화 사업 분야 등 지원을 위해 비영리기업 인큐베이팅과 2030청년영화제를 지원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사, 2030년까지 200억원 출연금 목표 =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사장 신필균)은 증권 카드 보험 등 사무금융노사가 ‘차별 없는 일터, 함께 잘 사는 사회’를 기조로 상생(비정규직 차별 해소), 연대(비정규직 개선 노력 지원), 책임(사회 양극화 해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재단으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 2019년에 설립됐다.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하는 플랫폼 노동시장에 주목해 배달노동자에 이어 지난해부터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소년·청년세대가 생애의 첫노동으로 유튜브 노동현장에 들어와 근로계약서 없이 완성 영상본 1분당 1만원을 받는 등의 실태를 밝혀내고 권리구제를 지원했다.
올해는 쿠팡 4대보험 미가입 전수조사로 대규모(4만명) 적발 및 위장 고용의 심각성을 알렸다. 3.3노동자(3.3%의 사업소득세를 내는 사업소득자) 권리찾기 활동을 전면화하는 근로기준법 사회연대운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4년째 지속된 콜센터 노동자 중심의 감정노동자 치유사업은 수도권 외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연구사업으로 고령노동자, 이주노동자, 기후위기 속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실태 파악 등을 조사했다. 장학사업은 올해 노동권익활동가 및 투쟁사업장에 생활장려금 지원을 신설했다. 사회 불평등 양극화와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선 활동가 등을 격려하기 위해 ‘우분투상’을 매년 시상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12일 공동 창립기념식을 열고 2030년까지 총 출연금 200억원을 모으기로 했다. 올해 △금융투자협회 △처브라이프생명보험 △경기신용보증재단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KG모빌리언스 △SGI신용정보 △NH투자증권 등 7곳의 노사가 사회연대기금을 출연했다.
이들 사무금융우분투재단 금융산업공익재단 공공상생연대기금은 공동으로 2023년부터 ‘솔라시포럼’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솔라시’는 ‘노동과 시민사회의 벽을 허물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연대의 장을 새롭게 연다’는 취지를 담아 ‘노동-시민사회 연대’(Solidarity of Labor and Civic Society)의 영문 머리글자(Sollaci)를 따서 만든 단어다.
◆플랫폼·특고노동자, 프리랜서 상호부조단체도 = 노동법과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스스로 권익보호를 위해 만들어 나가는 상호부조 단체도 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모금과 금융산업공익재단의 후원으로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이사장 김동만, 한국노동공제회)가 2021년 10월 출범했다.
한국노동공제회에는 가사돌봄·대리운전·배달 직종으로부터 시작해 통번역가 웹툰·웹소설작가 디자이너 보험설계사 펫시터 등 수십개 직종의 플랫폼·특수형태근로 노동자와 프리랜서들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9월말 현재 30여개 직종의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1만2000여명이 가입했다. 이 가운데 4000여명이 공제회 각종 사업에 상시로 참여하는 진성회원이다.
한국노동공제회는 소득이 불안정한 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들의 생활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산업공익재단의 후원으로 자산형성지원사업을 통해 시중은행 적금 신규가입후 월 10만원(만 39세 이하 청년 월 20만원까지) 적금 납입시 3년간 20% 응원금을 지원한다. 올해 960명을 포함해 2022년부터 2350명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건강검진 지원사업(협약기관 검진시 10만원 지원) △대리운전자 간이쉼터 운영 △택배노동자 부딪힘방지 안전패드 부착사업 △프리랜서 불공정·미수금 법률상담 및 역량강화교육 △프리랜서·플랫폼노동자 권리보호 정책활동 등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공공노련 등 노조와 우리금융그룹, 자비스앤빌런즈 등 기업, 대한산업안전협회 등이 한국노동공제회에 1억원 상당의 기부금을 냈다.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역량강화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대·중소기업 안전보건 상생활동도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현대자동차그룹 6개사가 출연해 2022년 10월 설립한 산업안전상생재단(이사장 안경덕)으로 국내 최초의 산업안전보건 전문 공익재단이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