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예외주의, 내년에도 지속될까

2024-12-30 13:00:01 게재

주요 연구소·금융기관 긍정 … ‘곧 거품 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미국 예외주의(US exceptionalism)’는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분야에서 미국이 경쟁국보다 우월하고 따라서 세계를 선도할 운명을 짊어진 예외적인 국가라는 개념이다. 특히 올해는 미국경제의 ‘나홀로 호황’이 뚜렷해지면서 투자업계를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미국 예외주의’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됐다.

미국 금융시장의 강점과 다른 모든 경제를 계속 능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은 현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자본을 단일 국가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의 상대적 가격은 100년 전 데이터를 수집한 이래 가장 높고, 상대적 밸류에이션은 반세기 전 데이터를 수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1920년대와 닷컴시대 등 과거에는 미국시장이 상승하면 다른 시장도 상승했다. 하지만 요즘은 미국시장의 호황이 다른 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 결과 1980년대 30%에 불과했던 전세계 대비 미국 증시 비중은 7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세계경제에서 미국경제가 차지하는 비중 27%보다 훨씬 높다. 달러 역시 50년 전 금본위제를 포기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치로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미국경제의 예외주의가 내년에도 지속될까. 최근 발표된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내년 전망은 강세 일변도다. 골드만삭스와 JP모간체이스는 현재 6000포인트 안팎인 S&P500지수가 내년 말 650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도이체방크는 이보다 더 높은 7000을 제시했다. 현 수준 대비 각각 8%와 16% 높은 수준이다.

미국과 세계시장 간 격차는 미국 대기업들의 수익성, 글로벌 영향력, 기술혁신에서의 선도적 역할 등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공감대다. 게다가 투자자들은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 관세인상 세금인하 규제완화 등으로 미국경제가 더욱 부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국 예외주의가 지나칠 정도로 확산됐다며 거품붕괴론을 우려하고 있다.

인프라·설비 투자로 성장세 뒷받침

영국 글로벌 경제정책 연구소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지난달 중순 보고서에서 “미국 예외주의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며 “내년 미국경제 성장의 핵심 동인은 소비지출과 기업 설비투자이며 두가지 모두 강력한 순풍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1인당 GDP 성장률은 지난해 선진국 중 3번째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가장 높은 성장률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미국 생산성 성장률은 유로존과 영국 캐나다를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옥스퍼드에 따르면 미국의 생산성 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과거 이뤄졌던 연구개발 투자, 수급이 원활한 노동시장이 계속 생산성을 뒷받침할 전망이다.

옥스퍼드는 “노동력 증가와 함께 강력한 생산성 증가로 내년 미국경제의 단기적 잠재 GDP 성장률이 상승할 것”이라며 “이민과 무역에 대한 트럼프정부의 입장은 잠재적 GDP 성장률에 걸림돌이지만 2025년엔 그리 큰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경제는 팬데믹 기간 동안 다른 선진국들을 압도하는 규모의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폈다. 이는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적자지출이 모두 이전지출(transfer payments)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초당적인 인프라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법 등은 기업의 설비투자를 지원하고 생산성 성장을 견인한다.

인프라 투자, 특히 제조업 인프라 투자가 늘면서 내년 설비지출의 순풍이 될 전망이다. 공장 건설 증가와 그에 따른 설비투자 증가 사이에는 약 2년의 시차가 있다. 옥스퍼드는 “올해 미국 제조업 인프라 투자는 전후 최대 규모이기 때문에 내년과 내후년 설비투자 사이클이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적자지출로 성장과 이익 인위적 견인

하지만 거품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투자기업 ‘록펠러 인터내셔널’ 회장 루치르 샤르마는 지난 16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강세론자들은 미국 기업들의 인상적인 실적 덕분에 미국이 여전히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요 대기업의 비정상적인 이익과 막대한 정부지출이 아니었다면 미국경제는 그렇게 예외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상 최대규모의 적자지출로 성장과 이익이 인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부채 의존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샤르마 회장에 따르면 미국 GDP에 1달러를 추가 창출하려면 거의 2달러의 신규 정부부채가 필요하다. 이는 불과 5년 전에 비해 50% 증가한 수치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예산을 지출한다면 투자자들이 도망가겠지만, 현재로서는 미국이 세계최고 경제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이기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미국 재정적자 확대나 대규모 국채경매로 인해 내년 어느 시점이 되면 투자자들은 미국채에 대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거나 또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라며 발을 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정부지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고 그 결과 경제성장과 기업이익이 약화될 수 있다.

샤르마 회장은 “미국의 대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미국시장의 거품이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지지부진한 경제로 신음하는 독일과 프랑스 경제가 회복세에 돌입할 수 있다. 또 트럼프 관세와 내수 부진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이 마침내 소비를 늘려 경제를 안정시킬 수도 있다. 거품은 종종 예기치 않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최근에 글로벌 시장에 경고음을 낸 2가지 사례는 2011년 신규 공급이 급증하면서 거품이 터진 원자재 호황, 부동산부문에 대한 정부 단속으로 2021년 붕괴된 중국 성장 거품이었다.

샤르마 회장은 “상승추세가 오래 지속될수록 투자자들은 자신감을 갖고 무분별한 매수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엔진이 멈추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며 “극단적인 가격, 밸류에이션, 심리 등 모든 전형적인 징후는 끝이 가까웠음을 시사한다. 이제 ‘미국 예외주의’에 맞서 베팅할 때”라고 주장했다.

연준 오락가락 행보도 예외주의 위협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오락가락 행보가 미국 예외주의를 멈춰세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케임브리지 퀸스칼리지 학장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연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이 미국 예외주의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엘 에리언 학장은 지난 23일 FT 기고에서 “연준은 지난 5개월 동안 금리동결(7월 말), 0.5%p 전격 인하(9월 중순), 0.25%p 인하(11월 초), 이전의 선제적 정책방향 지침과 경제 해석 뒤집기(12월 중순)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며 “또 기준금리 점도표는 2.5% 미만에서 4%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이달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지만 매파적 통화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전 예상과 달리 내년 금리인하 횟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S&P500 지수는 3% 하락했고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0.1%p 이상 상승했다. 연준이 채권 매입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 S&P500 지수가 급락한 2013년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 이후 가장 큰 폭의 변동이었다. 월가 ‘공포지수’는 약 15에서 장중 최고치인 28까지 급등했다.

엘 에리언 학장은 연준의 전략적 정책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정책적 혼란이 야기된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2021~2022년 물가급등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잘못 판단한 이후 지나치게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통화정책은 최신 데이터가 보여주는 방향대로 흘러갔고, 이는 곧 정책의 방향전환으로 이어졌다. 그는 “연준의 과도한 데이터 의존도가 지속되면 미국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기본적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는 미국경제가 현재 글로벌 성장의 유일한 의미 있는 기관차라는 점에서 미국을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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