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 불소 정화규제 합리화…위해성평가 개선 속도내야
토양-지하수, 통합적 관점으로
후속 제도 개선 작업 이뤄져야
토양 중 불소에 대한 정화규제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토양 위해성평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연적으로 이미 토양 속에 있는 물질인지, 인위적인 오염인지를 구분해 차별화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위해성평가는 환경 유해 인자가 환경에 배출되거나 생활 환경에서 사용될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추정하는 것이다. <내일신문 12월 16일자 환경면 참조>
30일 국회입법조사처의 ‘토양 중 불소 관리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가 토양 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불소와 인간 활동으로 인해 오염이 일어난 불소를 분리해 관리한다. 또한 자연기원 불소에 대한 토양기준을 가진 국가들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하수 등에 미칠 수 있는 위해성을 평가한 뒤 부지별로 관리하는 방안을 채택 중이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자연기원 불소는 지각과 해양에서 각각 13번째, 12번째로 많은 물질이다. 산업활동 등을 통해 배출되는 인공기원 불소는 불화수소(HF) 염화플루오린화탄소(CFC) 과불화합물(PFAS) 등이 있다. 토양에 영향을 주는 물질은 대부분 PFAS다. PFAS는 물 기름 열 등에 강한 내구성과 저항성이 있어 화장품 방수제 계면활성제 등 다방면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분해되지 않고 토양 등에 남아 있어 전세계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등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6년전부터 불소 정화 논란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환경부가 위해성평가계획서 작성 및 사후관리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토양오염물질 위해성평가 지침’으로 정한 뒤 불소 정화 대상 수가 증가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2018년 대비 2022년 6배 늘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8~2022년 수도권 지역의 불소 정화비용은 약 250배 늘었다.
자연히 주택·건설업계와 토양정화업계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주택·건설업계는 자연기원 불소가 정화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공사지연이나 분양가 인상 등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토양정화업계는 불소가 유해하기 때문에 국민 안전을 위해서 종전과 같이 관리를 해야 한다며 맞섰다. 국무총리실 규제심판부는 관리체계의 합리적 개편을 권고했고 환경부는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일부개정해 불소에 대한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완화했다.
토양오염물질은 불소를 포함한 23종과 환경부 장관이 필요에 따라 고시한 물질 등이다. 이들 물질이 우려기준을 초과할 경우 정화책임자는 오염토양을 정화해야 한다. 우려기준이 곧 정화기준인 셈이다.
토양오염을 정화할 때는 대부분 토양세척 공법을 적용한다. 토양세척 공법은 간단히 설명하면 토양을 빨래하듯이 빨아 오염물질을 없애는 방식이다. 기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처리나 분상화 작업을 통해 큰 입자를 작은 입자로 분쇄하는 과정 등을 거친 뒤 특정 오염물질에 최적화된 산용출제를 주입해 화학적으로 탈착 되는 반응을 유도한다.
문제는 토양오염 우려기준이 완화됐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국민 안전을 합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더 늘었다. 당장 위해성평가만 해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위해성평가 기관이나 전문 인력 보강 등 규제 합리화를 위해 선행돼야 할 일들이 산적했다. 환경부는 내년부터 위해성평가를 고려한 토양오염 관리 체계 확대를 위한 작업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와 토양 오염 관리 체계가 비슷한 국가는 일본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의 ‘지질 기원 토양오염 적정관리를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자연 기원 토양오염의 경우 ‘자연 유래 특례구역’으로 관리한다. 지질학적으로 비슷하게 오염이 되어있기 때문에 일정 구획만을 봉쇄하는 건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토양오염 조사 구역은 크게 조치실시구역과 형질변경시 신고구역 등으로 나뉜다.
조치실시구역은 오염 제거 등의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는 구역으로 원칙적으로 형질변경이 금지된다. 형질변경시 신고구역은 토양오염은 있지만 건강피해 우려가 없는 구역이다. 하지만 형질변경을 한다면 신고가 필요하다. 건강피해 가능성이 있을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주변 토지에서 지하수 음용 여부 △일반인 출입 여부 등이다. 또한 일본의 지질 기원 토양오염 판단을 위한 요건은 △오염 상태가 지질학적으로 동질한 상태로 퍼져 있을 것 △제2용출량 기준에 적합할 것 등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토양 중 불소 관리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는 △자연기원 불소는 토양오염이 확인되면 정밀조사를 거쳐 위해성을 평가하도록 하고 △PFAS의 경우 개발 전에 토양오염이 확인되면 반출해 정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토양 위해성 평가를 개선할 때 토양은 물론 지하수 등 환경매체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토양과 지하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표면의 오염물질은 지하수 등 물 순환을 따라 확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하수는 한번 오염되면 완전한 복원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토양은 ‘토양환경보전법’으로, 지하수는 ‘지하수법’으로 각각 오염물질을 관리 중이다. 불소와 관련해서는 ‘토양환경보전법’에서 불소오염기준을 정한다. 하지만 ‘지하수법’에는 불소 기준이 없다. 토양 퇴적물 오염평가 기준에도 불소 물질은 없는 상황이다.
어렵게 규제 합리화가 이뤄졌다면 후속 조치 역시 분절적이고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통합적인 관점으로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체 흐름을 제대로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