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정치자금’ 유죄…‘돈봉투 의혹’ 무죄

2025-01-09 10:16:21 게재

법원 “이정근 녹취록 위법수집 … 증거 안돼”

다른 재판, 증거인정 … 항소심 쟁점 될 듯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유죄 판단을 받았으나 ‘민주당 돈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이 ‘돈봉투 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지목됐던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이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윤관석 전 민주당 의원 등 다른 의원들이 이미 같은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향후 재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앙법원 형사합의21부(허경무 부장판사)는 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정당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송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핵심증거였던 이른바 ‘이정근 녹취록’에 대해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되레 “검찰 수사 개시 자체가 잘못됐다”고 판시했다.

송 대표는 재판에서 줄곧 ‘이정근 녹취록’이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재판부도 위법수집증거 문제만 심리할 변론기일을 따로 지정했을 정도다. 결국 재판부는 송 대표의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받아주었다.

‘이정근 녹취록’은 2021년 민주당 대표 경선과 관련해 관계자와 금품을 주고받은 통화 내용으로 검찰의 ‘돈봉투 사건’ 수사의 시작이 됐다.

검찰은 2022년 사업가 박 모씨의 이씨에 대한 진정을 접수받고, 이씨 주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나 휴대전화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던 이씨는 같은해 구속되자 태도를 바꿨다. 이후 검찰은 이씨 지인을 통해 휴대전화 3대에 담긴 3만여개의 통화 녹음파일을 확보한 후 이씨로부터 임의제출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정근 휴대전화는 임의 제출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휴대전화 제출이 이씨 뜻대로 이뤄진 것인지부터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며 “휴대전화 안에 있는 전자정보를 ‘범위 제한 없이 전부’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어 “이씨는 일관되게 ‘자동 녹음장치가 돼 있어 무슨 녹음파일 등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제출했다’고 증언한다”면서 “실제 추출된 전자정보량이 수십만 건에 달해 이씨가 제출 범위를 명확히 알면서 의사를 표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검사가 임의제출 범위를 확인한 문답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추상적·포괄적으로 질문해 단답을 받은 데 불과하다”며 “이런 문답의 기재만으로 압수수색영장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해당 녹음파일은 이씨가 돈봉투 살포 사건의 공범으로 처벌받게 될 증거들인데도 이를 알면서 처벌을 감수하고 수사기관에 제출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알선수재 등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확보한 자료를 폐기하지 않고 갖고 있다가 돈봉투 사건 수사에 활용한 것은 위법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어떤 증거를 한 번 임의제출 받으면 어떤 사건에든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검사 주장의 법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확인되지 않은 제출자의 임의제출 범위에 대한 의사를 수사기관이 함부로 추단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해당 휴대전화 안에 있던 파일을 돈봉투 의혹 사건 증거로 쓰려면 새로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정근 녹취록’을 위법수증거로 판단하면서 관련 사건들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장 9일에는 윤관석 전 의원과 임종성 전의원, 허종식 의원의 정당법위반 사건 2심 첫 공판기일이 예정돼 있다. 이들은 모두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당시 1심 재판부는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씨가 이 사건 관련 녹음파일이 저장된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에 임의제출했다”며 자신의 적극적 의사로 검찰에 임의제출했다고 봤다.

반면 검찰은 이같은 판결을 거론하며 항소심 등에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날 “동일한 쟁점이 제기된 관련 사건 재판에서 이씨가 휴대전화 내 전자정보를 임의로 제출했다는 판단이 거듭 이뤄졌고 일부 공범은 이를 전제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고 언론에 공지했다.

한편 송 대표는 2021년 3∼4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되기 위해 총 6650만원이 든 돈봉투를 당 국회의원과 지역본부장에게 살포하는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1월 4일 기소됐다. 그는 2020년 1월∼2021년 12월 사단법인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 연구소’를 통해 후원금 명목으로 기업인 7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도 받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서원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