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극단과 증오의 정치 넘어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둘러싸고 한남동 관저 일대가 일촉즉발이다. 대통령 경호처는 한남동 관저를 철조망과 차량으로 요새화했다. 관저 외부는 극렬 지지층이 둘러싸고 내부는 경호처 직원들을 동원해 ‘인간방패’를 구축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는 ‘윤석열 개인 산성’으로 변질됐다. 윤 대통령은 평생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온 수많은 군인과 경찰, 공직자들을 ‘내란범’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경호처 직원 수백명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철조망’이나 ‘경호원 팔장끼기’는 사실 유치한 방법이다. 윤 대통령측 주장대로 법원의 영장이나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고 이에 대한 합법적 경호라면 경찰 헬기를 향해 대공포를 발사할 수도 있다. 공수처 검사들이 관저에 ‘무단침입’하는 ‘국가전복세력’이라면 발포해도 정당방위다. 경호처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윤 대통령, 애꿎은 사람 인생 망치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길
그나마 내란사태가 조기에 종료돼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내란에 실패한 윤 대통령이 경호처 뒤에 숨어 오히려 ‘불상사’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국방부와 경찰이 경호파견 부대에 대해 ‘체포영장 집행을 막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경호처 공직자들도 ‘불법적인 지시’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경호처가 특정 개인을 위한 ‘사병’은 아니지 않는가.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애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으로 헌법과 사법체계 내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야 한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윤 대통령 강성 지지자들은 과거에는 “박근혜 만세”를 불렀다. “이승만 박정희 만세”도 소리쳤다. 이들은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 일부는 이스라엘기까지 흔들고 있다. 정작 미국의 주요인사들은 이번 비상계엄을 “심각한 오판”이라며 사실상 불법 쿠데타로 규정한다.
한미동맹 극렬 지지자들이 왜 미국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지도 아이러니다. 이들이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고 계엄을 옹호할 수는 있지만 법의 테두리 내에서 용인될 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지지는 보호될 수 없다.
우려스런 것은 여당의원 다수가 이 대열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의원 40여명은 6일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으로 몰려갔다. 상당수가 영남권이나 친윤계 의원들이다. 이들은 법치라는 국회의원 본분보다 차기 공천 유불리가 관심사인 듯하다.
12.3 내란을 막은 공이 크지만 더불어민주당도 이러한 극단의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일부 극렬지지층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국회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비명계 의원들을 ‘수박’으로 낙인찍고 문자폭탄을 보내고 위협하는 행태도 보였다. 친명의원들 또한 이런 극렬 지지층에 편승해 대의를 헌신짝처럼 버렸었다.
이처럼 주요 정당과 정치인들이 극단적 주장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에 편승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국민 전체를 편 가르고 부모형제, 이웃마저도 원수지간으로 만들고 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총부리를 겨누는 ‘쿠데타’는 그 속에서 자라났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이 집중되고 거대 양당이 대립하는 정치구조에서 정치 양극화는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45년 만의 비상계엄, 내란사태는 보수 진보를 떠나 한국 정치체제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45년 만의 내란사태는 한국 정치 대전환 요구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지난해 12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의견에 94.5%가 동의했다.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책임이 가장 큰 주체’로 절반 가까운 47.0%가 ‘정치권’을 지목했다. 극단은 증오를 부풀리고 결국 다수 국민들의 희생을 부르게 마련이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서로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개헌이든 선거제 개선이든 뭔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란사태를 조속히 마무리짓고 국민적 합의와 타협을 통해 ‘병든’ 정치를 치료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란사태는 ‘어슬픈 군미필자의 헛발질’로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 정치권은 양 극단에 기댄 권력투쟁을 멈추고 상식이 통하는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차염진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