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못찾은 HMM, 15조원 어떻게 쓸까 고민
자사주 매입·소각 관심 … 하반기 시황악화 전망 부담
지배구조 불확실성 제거도 기업가치 제고 중요 방법
미국 동부항만 협상 타결 …단기 운임상승 변수 ‘해소’
3월 하순 예정된 HMM 정기 주주총회에 소액주주들과 해운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HMM이 지난해 홍해사태라는 ‘예상치 못한 구세주’로 2023년보다 높은 실적을 기록하면서 배당 등 주주환원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확정될지도 관심사다.
HMM은 올해 3분기까지 9개월간 누적 매출액 8조5453억원, 영업이익 2조5127억원, 당기순이익 2조8843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기록을 모두 넘어섰다.
여기다 4분기에도 홍해사태가 계속되면서 ‘상하이 컨테이너해상운임종합지수’(SCFI)가 2000포인트를 웃돌아 추가 이익을 쌓았다. SCFI가 1000포인트를 넘어서면 운임수익이 흑자를 기록하는 HMM은 연말 기준 3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분기까지 13조2000억원 규모였던 이익잉여금도 연말기준 1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3분기까지 유동자산도 16조원 규모다.
◆‘밸류업 프로그램’ 공시 않을 수도 = 산업은행(지분 33.73%)과 함께 HMM의 양대 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지분 33.32%)는 9일 △정부가 대주주이고, 보유현금도 사상 최대인 HMM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2대 주주 해진공은 HMM 지분 매각에 대해서 ‘소극적’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해명하는 반박자료를 발표했다.
해진공은 “HMM의 주주환원정책은 주주가 아닌 HMM이 자체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마련하는 것으로, 현재 HMM은 다양한 방안을 검토중이며 적정 시기에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음”이라고 밝혔다. 또, (해진공은) HMM의 ‘민간 주인 찾기’ 노력을 지속한다는 입장으로, HMM 지분 매각에 ‘소극적’이라는 의견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HMM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9월 한국거래소의 밸류업지수에 포함된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HMM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7배로 1보다 낮다. PBR이 1보다 낮으면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뜻이 된다. 특히 글로벌 10대 해운사 중 PBR 수준이 하위권으로 나타나 주가 부양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상장기업이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계획을 수립하고 주주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지난해 5월부터 밸류업 공시 정책을 시행했다. PBR 등 투자지표를 비교하는 기업 밸류업 페이지도 개설하며 기업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공시를 압박했다.
HMM도 밸류업 압박에 반응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HMM은 지난해 12월 17일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이라며 언론에서 제기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내부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검토 중이나,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 주주환원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정해진 바가 없음”이라고 공시했다.
9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2024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결산’에도 HMM은 없었다. 밸류업 지수에는 포함돼 있지만 아직 관련 공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자료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102개 기업 명단과 공시현황을 담았다.
HMM 관계자는 “밸류업은 자율공시 사항”이라며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확정돼도 공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 발표했지만 집행은 신중 = 소액주주들의 관심은 HMM의 주주환원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황창기 한국거래소 기업밸류업지원부 팀장은 “주주환원을 통해서만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투자나 새로운 산업으로 진출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시장에서 지배구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HMM은 지난해 9월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투자하는 중장기 전략을 수립·발표한 바 있다.
올해 2월부터 5년간 기간으로 운영하는 글로벌 선사들과의 협력체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결성도 같이 발표했다.
HMM(대표이사 김경배)이 글로벌 주요 선사와 2025년 2월부터 협력기간을 5년으로 하는 신규 협력체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또한 2030년까지 총 23.5조원, 이중 14.4조원을 친환경 설비에 투자하는 중장기 전략을 수립했다.
컨테이너 운송사업을 중심으로 벌크 운송사업과 통합 물류사업을 확장해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선진적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컨테이너 사업에는 11조원을 투자, 155만TEU(130척) 수준의 운용 선대를 확보해 글로벌 선사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고, 벌크 사업은 634만DWT(재화중량톤수. 36척)의 선대를 2030년까지 1256만DWT(110척)까지 확장하는데 5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통합물류서비스 경쟁력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 컨테이너 서비스 네트워크 확장에 걸맞은 신규 터미널과 시설에 4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고수익 내륙 물류기지(ODCY) 사업 진출과 화물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 서비스도 제공해 종합 물류사업 진출 기반도 확보하기로 했다.
해운부문 글로벌 목표인 국제해사기구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HMM은 2045년까지 조기 달성하기 위해 선박개조 친환경연료공급망 확보 등에 9000억원을, 디지털 기반 조직체계 구축에 1000억원을 투자한다. HMM은 친환경 경영 투자에만 총 투자금액 23조5000억원의 60% 이상인 14조4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차세대 선박연료가 무엇이 될지 불확실한 상황, 해운시황의 불확실 등으로 투자계획을 집행하는 데는 신중한 모습이다.
HMM 등 컨테이너 해상운송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해운기업들은 코로나 대유행과 홍해사태로 대규모 수익을 거뒀지만 호황을 가져온 전염병과 전쟁 가뭄 등 시장(수요·공급)의 외부 변수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홍해사태가 해결돼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던 선박들이 수에즈운하를 지나게 되면 선복량 공급효과가 커져 운임은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동부항만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협상도 8일(현지시각) 잠정합의를 보면서 파업을 막았다. 단기적으로 세계 해상운임을 자극할 수 있었던 파업 변수가 사라진 것이다.
◆정부지분 민간매각 일정 불투명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번째 임기를 앞두고 지정학적 갈등은 더욱 커지고 세계무역이 위축되면서 해운산업 전망도 먹구름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HMM은 공기업도 아니고 민간기업도 아닌 취약한 지배구조에 노출돼 있다. 시장과 소액주주들이 요구하는 밸류업 프로그램과 투자계획 실행을 책임있게 진행할 소유구조와 경영자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HMM의 양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해진공이 보유한 주식 비중은 현재 67%에 이르지만 4월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71%까지 늘어난다. 정부는 산은과 해진공의 주식을 민간에 매각해 HMM의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지난해 하림그룹 팬오션과 매각협상 결렬 이후 재매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내란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돼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도 취약한 상태다. 3월 주총을 앞둔 HMM은 사장 부사장 사외이사 등에 대한 교체 여부와 후임 인선 등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해운시장은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월부터 세계 2위 선사 머스크(덴마크)와 독일 하팍로이드가 결합한 새로운 해운동맹 제미나이가 출범하고, HMM은 ONE(일본) 양밍(대만)과 함께 프리미어얼라이언스를 결성해 세계 1위 선사 MSC(스위스)와 협력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은 프랑스 CMACGM과 함께 오션얼라이언스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 최대 해운선사 코스코를 7일 연방관보 블랙리스트에 등재했다. 미국 정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과 미국 기업의 거래를 막는다. 코스코가 미국화주들 상품을 운송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거대한 전환기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공기업도 아니고 민간기업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가장 좋지 않다’고 하던 HMM 내부의 우려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