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명태균 게이트’ 열리나
검찰 수사보고서에 여론조사 받았다는 대화 담겨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 뇌물죄 적용될 수도
박정훈 대령 무죄에 ‘VIP 격노설’ 수사 탄력
▶1면에서 이어짐
명태균씨는 2021년 7월 3일 “내일 공표 보도될 여론조사 자료”라며 “보안 유지 부탁”과 함께 파일을 보냈고, 김건희 여사는 “넵 충성”이라고 답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윤 대통령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김 여사가 “큰일이다, 이러다 홍한테 뺏기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자 명씨가 “어렵다”고 안심시키며 “자체조사를 해보겠다”고 한 대화 내용도 담겼다.
이렇게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기간 동안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직접 제공받은 비공표 여론조사는 최소 4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강혜경씨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명씨가 지난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을 위해 총 81차례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3억7000여만원에 달하는 비용 대신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을 폭로한 바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저는 명태균씨한테 무슨 여론조사를 해달라는 얘기를 한 적은 없다”며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었다.
그는 “여론조사가 잘 나왔기 때문에 조작할 이유가 없다”며 “잘 안 나오더라도 그걸 조작한다는 것은 제 인생을 살면서 그런 것 해본 적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보고서에 담긴 명씨와 윤 대통령 부부의 대화를 통해 이같은 해명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윤 대통령이 제출한 지난 대선 기간 정치자금 자료에는 명씨나 명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에 여론조사 명목으로 지출된 비용이 없다. 무상으로 여론조사 보고를 받거나 누군가 대신 비용을 지불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 여론조사 비용 대신 공천을 해줬다면 뇌물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현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면 얼마든지 수사와 처벌이 가능해진다.
◆내란 배경에 명태균 의혹 있었나 = 검찰이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지난해 11월 4일로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같은 달 15일 명씨가 구속됐다.
12.3 내란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의 검찰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4일 명씨 등을 언급하며 “이게 나라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다”고 발언했고, 이날부터 계엄 선포문과 포고령 등 실질적인 계엄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적시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배경 중 하나로 명씨 의혹이 거론되는 이유다. 공교롭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달 3일 검찰은 명씨를 구속기소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주 최고위원회에서 “명태균의 폭로로 윤석열과 김건희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상계엄까지 불사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영장 집행에 반발하며 수사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이미 상당부분 구체화된 상태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김 전 장관 등 내란을 실행한 주요 군 지휘관과 경찰 수뇌부를 구속기소하면서 내란의 우두머리로 윤 대통령을 지목했다.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군 지휘관과 경찰 수뇌부에 연락해 국회 봉쇄와 국회의원 체포 등 계엄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도록 직접 지시하고, 주요 정치인 등 체포조 운영에도 직접 관여했다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점거와 서버 반출, 선관위 직원 체포 시도도 윤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으로 파악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하면 이같은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 대면조사를 위해 준비한 질문지는 200쪽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수사, 윗선으로 =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관련 항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윤 대통령의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사외압 의혹은 폭우 실종자 수색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려 했으나 윤 대통령이 격노한 이후 국방부 수뇌부가 개입해 이첩을 보류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실제 공수처 수사 결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2023년 7월 30일 수사단의 수사보고서에 결재까지 했으나 지난해 8월 대통령실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김계환 당시 해병대사령관에게 이첩보류를 지시했던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에 따라 김 전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하지만 박 대령이 이를 무시하고 다음달 2일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하자 군검찰은 박 대령을 항명 등 혐의로 기소했다.
군사법원은 “박 대령이 받은 지시는 정당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군인 사망 사건은 ‘지체 없이’ 민간 법원에 이첩하도록 한 개정 군사법원법 취지에 맞지 않은 이첩 보류 지시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VIP격노설’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 장관 등 군 수뇌부에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가능해진 만큼 윤 대통령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수사할 수 있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를 마치는 대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수사를 최우선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