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노조설립 40년 만에 첫 조정신청, 끝내 합의 이끌어
일반적으로 조정은 쌍방의 상호 이해와 양보를 바탕으로 제3자의 설득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노동쟁의 조정은 ‘노동관계 당사자 간 발생한 노동쟁의에 대해 제3자인 노동위원회(노동위)가 공정한 입장에서 조정안을 제시하고 이를 수락할 것을 권고하여 노동쟁의를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조정은 신청 후 10일 동안 진행되며 실무적으로는 본조정으로 불린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제3자인 노동위가 갈등 요인을 파악하고 노사 양측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조정안을 제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위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본조정 외에 대안적 분쟁해결(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의 일환으로 사전조정과 사후조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전조정은 노동조합이 본조정을 신청하기 전에, 사후조정은 본조정이 불성립(조정중지 또는 조정안 거부)된 이후에 노동위가 교섭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와 같은 제도들은 조정위원의 구성, 회의 진행 기간, 회의 장소 등의 제한이 본조정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해 보다 효율적인 조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노사가 사전조정제도를 활용해 임금 및 단체협약을 합의했던 A사 사례다. A사 노조가 노동위에 조정신청을 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흔치 않았기에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쟁의행위를 차치하고서라도 노조 설립 이후 약 40년 동안 단 한차례도 조정신청을 하지 않았던 A사 노조가 왜 이 시점에서 조정신청을 하게 되었을까?
대안적 분쟁해결제도 ‘조정서비스’
A사는 경영악화로 인해 수년 동안 임금을 동결해왔다. 이로 인해 노조는 장기간 임금동결로 구성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며 두 자릿수 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반면 회사는 재도약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며 임금동결 입장을 고수했다.
노사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1차 회의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회사는 수정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임금동결 입장을 고수했고, 노조는 회사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판하며 처음으로 쟁의행위를 할 것임을 밝혔다.
순식간에 3차례의 조정회의가 모두 종료됐고 노사 양측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담당 조사관으로서 조정이 어렵다고 판단돼 조정중지도 검토했으나 그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노사 모두 구체적인 협상안을 가지고 논의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가 쟁의행위에 들어가게 되면 처음 경험하는 만큼 크나큰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노동위는 이러한 상황을 노사 모두에게 설명하며 추가적인 교섭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충분한 기간을 두고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노사 양측의 동의를 얻어 본조정을 취하하고 사전조정제도를 활용해 교섭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전조정으로 교착상태 돌파
노동위는 회사측에는 논의 가능한 제시안을 마련할 것을, 노조측에는 회사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요구안을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회사는 다음에 열린 회의에서도 여전히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임금인상률에 대해 노조 측이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인 점은 그나마 진전된 상황이었다. 가을의 끝자락인 10월에 시작된 A사 조정사건은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고 겨울 문턱인 12월까지 이어졌다.
“다음 회의에서는 노조에 임금인상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회의를 앞두고 회사 관계자의 이 한마디는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상황이 개선될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회의에서 회사는 구체적인 기본급 인상안과 함께 별도의 일시금이 포함된 수정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회사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수정안을 신중히 검토했다. 이후에도 노동위의 몇 차례의 조율과 권고가 이어졌고 그동안 길게 진행됐던 A사의 조정 건은 마침내 합의를 이뤄 노사는 임금·단체협약을 타결했다.
노조 설립 이후 40년 만에 처음 신청한 조정이 노사 상호 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과 더불어 노동위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조정서비스 제공이 교섭타결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실감했다.
A사 조정 건은 노동위의 사전조정을 통해 노사 간의 분쟁이 효과적이고 유연하게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만약 본조정만 했다면 아무런 성과 없이 10일 안에 끝났을 사안이 사전조정을 통해 해결된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과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