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너무 어려운 목표, 단잠자기

2025-01-20 13:00:08 게재

최근 ‘내란성 불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의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불면증이 없었는데도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정신적인 자극이 늘어나면 오히려 신체활동이 줄어든 밤에 접어들어 낮 동안 쌓인 걱정과 정보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아 얕은 잠만을 유지하거나 자주 깨는 일이 흔해진다. 심지어는 자다가도 수시로 핸드폰 뉴스를 확인하며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람까지 생긴다.

교감신경이 휴식하지 못하는 시대, 우리는 수면의 질을 단순히 ‘몇 시간 잤는가’로 판단하는 대신, 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잠은 종종 ‘생산성을 해치는 방해물’처럼 여기곤 한다. 지금은 좀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4시간 수면이 성공의 열쇠처럼 여겨지거나 무조건 새벽 5~6시에는 일과를 시작해야 ‘갓생’을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신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가 낮 동안 경험한 정보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기억을 삭제하며 새로운 창의력을 키우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실제로 수면연구에 따르면 뇌는 잠자는 동안 쓰지 않는 시냅스를 약화시키고 유용한 연결을 강화해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돕는다. 불면은 이 과정을 방해해 단순히 피로를 초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고력을 저하시키고 정서적 균형을 무너뜨린다.

취침 전 뇌 자극하는 흥분상태 차단

현대인에게 숙면이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숙제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의학적 주요 원인은 우리의 뇌가 상시경계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뉴스를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며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것은 뇌를 끊임없이 흥분상태로 유지하게 만든다.

뇌가 휴식모드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받으려면 우리는 의도적으로 뇌에게 활동 일시정지 기능을 훈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한가지 권장되는 방법은 자기 전 단순한 루틴을 만들어 뇌에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예컨대 빛을 줄이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독서를 하는 것은 뇌의 긴장을 풀어준다.

또 다른 관점에서 잠에 대한 기대가 불면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나는 8시간을 자야 한다”는 강박은 잠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더 몰아세우게 만든다. 실제로 6시간만 자도 충분히 회복이 가능한 사람도 있고 9시간을 자야 다음 날 기능이 원활한 사람도 있다.

수면시간의 절대적인 기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세심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간헐적으로 잠에서 깨는 일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두번에 나뉜 수면을 했다는 학설도 있다. 밤중에 자연스럽게 깨어난 시간은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하기에 좋은 순간이 될 수 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불면은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만이 아니라 몸의 특정 장기와 기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로 해석된다. 특히 간과 심장이 지나치게 과로하거나 소화기가 저녁에 활발히 작동하면 잠이 방해받기 쉽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전 대추차 국화차 같은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족삼리혈을 가볍게 마사지하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의학에서도 밝혀졌듯 이러한 행위는 몸의 자율신경계를 안정시켜 깊은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호흡법을 활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예를 들면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배를 내밀며 숨 들어 마시고 배를 당기며 내쉬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아무 생각없이 호흡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잠들게 될 것이다. 복식·명상 호흡법은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과학적으로 검증된 한가지 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훈련하는 것이다. 불면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 있는 시간도 몸은 회복의 과정을 진행한다.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지금 쉬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교감신경의 흥분을 줄일 수 있다.

잠에 대한 집착적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

수면은 더 이상 성과 중심의 사회가 강요하는 사치가 아니라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기보호의 도구다. 잠을 적게 자야 원하는 바를 이룬다거나 잠을 어떻게 자야 몸이 정상상태로 기능한다거나 하는 집착적 생각에서 벗어나야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활동을 정리하는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 오히려 사치로 느껴지는 요즈음이지만 그래도 이왕 노력을 한다면 몸을 쉬게 해 주는 쪽으로 해 보는 것은 수면건강을 위해 권하는 바다.

조현주 포레스트요양병원 병원장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