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연령 70세 “배움의 한 풀었다”

2025-01-23 13:00:03 게재

영등포구 ‘늘푸름학교’

초·중 과정 50명 졸업

“우리 엄마 / 억울하셔서 어쩌죠? / 딸만 낳은 건 / 아버지 염색체 문제라네요… / 할머니를 만나는 날 / 과학책 들고 공부 시킬게요” “과학관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 어느 반이 이길까 아슬아슬 게임도 즐기고… / 걷기 힘들다고 포기했다면 / 영영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교복 입고 재잘거리는 중학생, 소풍이며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자식들을 볼 때면 가슴 한켠에 허전함을 느꼈던 늦깎이 학생들이 50~60년 늦은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평균 연령 70세 학생 50명이 수년간 노력한 끝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생이 돼 학사모를 썼다.

23일 서울 영등포구에 따르면 구가 직접 운영하는 성인 문해(文解) 교육기관 ‘늘푸름학교(교장 최호권 구청장)’가 지난 22일 졸업식을 열었다. 당산동 구청 별관에 둥지를 튼 학교는 초·중학 과정을 포함해 총 6개 학급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졸업생은 50명이다. 초등생과 중학생 각각 27명과 23명이 학습과정을 훌륭히 마무리 했다. 구는 졸업생과 함께 가족들을 초청해 축하를 나누고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자리를 마련했다.

영등포구가 22일 늘푸름학교 졸업식을 연 가운데 최호권 구청장이 학사모를 날리는 졸업생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 영등포구 제공

학생들은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학교생활을 해왔다고 털어놓았다. 졸업생 대표 정선명(61)씨는 “꿈에 그리던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수학여행 가던 날, 정말 꿈길을 걷는 기분이었다”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공부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우리 학교’에서 배웠다”고 돌이켰다. 그는 “선생님들 사랑을 기억하고 늦깎이 학생들의 희망이 되겠다”며 “사회와 자손들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다.

정씨와 함께 졸업한 김옥순(93)씨는 서울시 성인 문해과정 졸업생 중 최고령이다. 91세에 중학 과정에 입학한 그는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전할 정도다. 다음달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졸업식에서 모범학생상을 받는다. 구는 “특히 지난해 신설한 ‘고졸 검정고시반’에서는 2명이 검정고시에 응시해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며 “성인 문해교육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고 자평했다.

재학생 대표로 나선 이은자(69)씨는 이같은 선배들에 대한 마음을 ‘보내는 말’에 담았다. 그는 “모르는 글씨도 알려주고 함께 미술도 했던, 너무 고맙고 뭐든 잘하는 선배들은 멋있었다”며 “동네에서 어디 가냐고 물으면 항상 돈 벌러 간다고 했지만 친구 선배와 한 마음이 돼 공부하고 지낼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고 전했다.

교장선생님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정씨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살아가며 처음 느끼는 행복함이고 자랑스러움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도 “틈 날 때마다 학교에 와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할 때는 정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거 같아 으쓱했다”고 털어놓았다. 최 구청장은 실제 학생들 시와 수필 그림 등이 담긴 책자를 집무실에 비치해둘 정도로 애정이 많다.

영등포구는 이날 3년간 휠체어를 밀며 어머니 등·학교를 돕고 지원한 딸에게 ‘명예학생상’을 수여하는 등 가족들 정성과 사랑에 감사를 전했다. 구는 교과과정과 함께 현장체험 합창제 예술작품전시회 등 다채로운 과정을 통해 배움에 대한 주민들 열정을 지속 응원할 방침이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배움에는 늦음도 한계도 없음을 몸소 보여준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전한다”며 “주민 누구나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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