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교, 고립주의 아닌 주권주의였나
파나마운하·캐나다·그린란드 등 타국 영토에 거듭 공세 … 미 역사학자 “1919년이 시발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되찾겠다고 연일 난리다. 터무니없는 통행료, 중국의 개입 등을 문제 삼으며 미국에 인도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대상으로도 억지에 가까운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간 역사학계는 트럼프 1기정부 외교를 고립주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미국의 제2차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했던 일부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역시 고립주의자라는 것.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움직임은 고립주의자라는 설명의 한계를 드러낸다. 캐나다를 합병하고 그린란드를 점령하며 파나마 운하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등 외국영토를 점령하겠다는 위협이 고립주의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럿거스대 미국사 교수 제니퍼 미텔슈타트는 트럼프를 ‘주권주의자(sovereigntist)’로 분류한다. 미텔슈타트 교수는 3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트럼프의 주권주의 기원을 추적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주권주의 정치의 기원은 100여년 전, 제1차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시작됐다. 급격한 세계화 추세로 점점 상호연결되던 국가들은 전쟁이 끝난 후 무역과 이주의 중단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제국이 몰락하고 새로운 민족주의운동이 등장하거나 번성해 일부 국가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다.
국제연맹에 위협 느낀 주권주의자들
이 극적인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초국가적 정부인 ‘국제연맹’ 창설 분위기가 커졌다. 각국 외교관과 변호사들이 국제연맹 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주권의 목적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촉발됐다. 세계무역과 이주 지지자, 식민지독립 운동가, 흑인 국제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은 범국가적 통치 시대의 도래를 환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결권과 국제공법, 민족주의 약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초국가적 정부라는 아이디어에 극한 반감을 가졌다. 이는 미국 주권주의 운동의 기원이 됐다. 1919년 ‘화해할 수 없는(irreconcilables)’이라는 명칭의 미 상원의원 단체는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았다. 이들은 애국단체, 참전용사 단체,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았다.
국제연맹이 미국의 통치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국제연맹은 미국 헌법을 세계정부로 대체하고, 미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훼손하며, 미개한 비백인 비기독교인 국가들이 미국 시민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었다.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공식적인 주권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백인 출신 지도자, 즉 앵글로색슨의 전통적인 통치형태를 보존하는 것도 이들의 목표였다. 주권주의자들은 국제협력이 앵글로색슨과 미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자유주의와 좌파 국제주의가 세를 확대하는 상황에서도 주권주의 정치는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주권주의자들은 고립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파시스트들의 반국제주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스페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민족주의 반란을 지원했으며,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정권을 용인하고 심지어 환호했다. 1977년 트럼프와 그의 첫번째 부인 이바나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노먼 빈센트 필 목사는 주권주의 운동 초기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주권주의자들은 유엔에 맞서 장기전을 시작했다. 1950년대 트럼프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시절 유엔에 맞선 투쟁은 반국제주의 정치를 펼치는 새로운 조직과 지도자들을 탄생시켰다. 대표적으로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극우단체 ‘존 버치 소사이어티’가 있다.
이들은 미국이 국제사법재판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참여하는 것에 저항했다. 이들은 그같은 국제조직을 미국 통치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유엔 협약과 기구가 공산주의자와 아시아인, 아프리카인에게 회원 자격을 주면서 백인·기독교 국가의 문명화 권위를 훼손한다고 봤다. 주권주의자들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민을 완화한 1965년 이민·국적법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이 법이 국경을 없애려는 국제주의자들의 음모를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이 지점에서 파나마 운하가 등장한다. 1950~1960년대 파나마 국민들은 유엔 헌장과 분쟁지역 관련 국제사법재판소 규칙을 인용해 파나마 운하에 대한 미국의 권위에 도전했다. 파나마에 운하를 양도하도록 유엔에서 외교활동을 펼치며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주권주의자들은 이 움직임을 미국영토를 훔치려는 음모라고 불렀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범미주의 정책위원회’ ‘애국사회연합’ 같은 단체는 파나마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는 이유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대통령을 비난했다. 1973년 파나마 지도자 오마르 토리호스는 자국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주최 청문회를 유치해 “우리나라의 심장부에 여전히 식민지가 있다”며 미국을 직격했다.
이 사건은 파나마인들의 대규모 시위와 함께 미국에 상당한 압박을 가했다. 결국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7년 파나마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파나마에 완전히 넘겨주는 조약에 서명했다. 이로 인해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주권주의자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결국 카터 대통령은 재임에 실패하고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신보수주의 후보에 권력을 넘겨줬다.
1980년대 들어서도 주권주의 운동은 지속됐다. 백인 중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유엔 제재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 레이건 대통령을 압박해 문화와 교육을 통해 평화와 인권을 증진하는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를 탈퇴하는 데 성공했다.
미소냉전이 끝나자 국제주의 흐름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을 휩쓸었다. 레이건의 뒤를 이은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신세계 질서’를 선포했다. 이후 미국은 다자간 무역협정을 추구하고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합의를 도출했다. 소말리아와 발칸반도 등 여러 분쟁지역에 국제평화유지군을 투입했다.
미국중심 신세계질서도 악몽
이는 주권주의자들에게 악몽이었다. 미국의 힘을 투영하는 도구로 국제 거버넌스를 수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성전이 더욱 더 중요해졌다. 주권주의자들이 보기에 그들은 미국의 자율성을 굴욕적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미텔슈타트 교수는 “주권주의자들은 성전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찾았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였다”고 지적했다.
사실 트럼프는 파나마 운하를 거론하기 훨씬 전부터 주권주의 의제를 충실히 수행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의 첫 임기와 퇴임 후 4년 동안 유엔과 NATO, 무역 및 기후에 관한 국제협정을 공격하며 주권주의 정치적 특징을 드러냈다. 이민자들에 맞서 미국 국경을 보호하려는 트럼프 정책도 마찬가지다.
미텔슈타트 교수는 “물론 트럼프 2기정부의 향후 외교정책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변덕이 극심한 트럼프이기에 언제든 주권주의 운동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국무장관인 마르코 루비오처럼 주권주의적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주권주의자들은 집요하다. 미국 보수주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2022년 트럼프 대선 승리를 가정하고 만든 정책제안집 ‘프로젝트2025’는 “미국헌법과 법치주의, 국민주권을 훼손하는 국제기구들과 국제협정들은 개혁이 아니라 폐기돼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강경 주권주의자들은 “필요하다면 유엔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이들은 기후변화와 불평등을 다루는 유엔 협정에 반대한다. 트럼프정부는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민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텔슈타트 교수는 “미국은 유럽연합과 NATO를 약화시킬 것이며 캐나다·멕시코와의 FTA를 연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파나마 운하와 관계없이 먼로독트린 시대처럼 미주대륙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되찾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