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이젠 ‘내란피의자 인권위’
“계엄은 통치행위” 의견표명, 군 피의자 긴급구제 논의
윤측 주장 여과 없이 답습 … 반대의견서 “계엄 위헌”
국가인권위원회가 ‘12.3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소추·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권고 및 의견표명을 내놨다. 내친 김에 내란사태를 주도한 국방장관 및 군 소속 피의자들의 구제에도 팔을 걷어붙일 기세다. 인권위는 17일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표명의 건’ 결정문 최종본을 공개했다.
인권위가 10일 전원위원회에서 수정 의결한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안을 정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인권 침해 방지 대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헌법재판소장에게 대통령 탄핵심판 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조사를 실시하는 등 적법절차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핵심이다.
서울중앙지법과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윤 대통령 등 계엄 선포 관련 피고인들에 대해 형사법의 대원칙인 불구속재판 원칙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냈다.
인권위는 결정문 곳곳에서 윤 대통령측이 반복해 온 주장을 그대로 답습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통치행위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한편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국회가 야당의 다수 의석에 기반하여 고위공직자 29명을 탄핵소추 발의해 그중 13명을 탄핵 소추한 것은 권한 남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야당 책임론을 들기도 했다.
특히 탄핵심판이 종반에 다다른 헌법재판소를 향해서는 “적지 않은 국민들은 몇몇 재판관이 속했던 단체와 과거 행적을 거론하며 대통령 탄핵심판과 헌법 가치와 질서를 구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거나 “국민의 50% 가까이가 헌법재판소를 믿지 못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는 언급들을 배치해 불신감을 자극했다.
반대 의견도 실렸다.
남규선 상임위원과 원민경·소라미 비상임위원은 결정문에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한민국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라며 “비상계엄 선포는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위헌·위법적 조치”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또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권은 헌법 제65조에 따른 정당한 권한 행사이며,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할 사안이지 독립적 국가인권기구인 인권위가 이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김용직 비상임위원도 반대의견에서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라고 보기 어렵고, 많은 변호사가 선임된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인권위가 나선다는 것은 상정하기 어렵다”며 “(찬성 측 위원들이) 계엄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계엄 행위 자체에 대한 비판 없이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권위는 내란사태에 연루된 군 인사들이 제기한 긴급구제 안건 논의에 들어간다.
인권위는 18일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등의 긴급구제 안건을 다루는 군인권보호위원회를 연다.
이들은 중앙지역군사법원의 일반인 접견 및 서신 수발 금지 조치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인권위에 구제를 신청한 바 있다.
인권위 산하 소위원회인 군인권보호위의 소위원장은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를 주도했던 김용원 상임위원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한 안건도 김 상임위원이 소위원장으로 있는 침해구제 제1위원회(침해1소위)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