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원칙 위반” 지적 무시하는 인권위

2025-02-19 13:00:05 게재

‘윤 방어권 권고’ 이어 내란 혐의 장성 지원

아시아 인권단체들 “인권위 신뢰성 위협”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에서 정한 국가인권기구 국제기준을 정면으로 위반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내란 혐의 장성들의 방어권까지 챙기고 나섰다.

18일 인권위는 서울 중구 인권위 회의실에서 군인권보호위원회(군인권소위)를 열고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등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군들의 방어권을 보호하라는 취지의 의견 표명 및 권고를 내리기로 의결했다. 소위원장인 김용원 상임위원은 앞서 지난 10일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안 처리를 주도한 인물이다.

앞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변호인은 문 전 사령관, 여 전 사령관, 이 전 사령관, 곽 전 사령관 등에 대한 군사법원의 일반인 접견 및 서신 수발 금지 조치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진정을 제기하고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군인권소위는 재판·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긴급구제안을 각하하는 대신 의견표명을 통해 이들에 대한 지원을 택했다.

인권위의 이같은 행보는 국제기준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파리원칙(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은 “쿠데타 또는 비상체계가 발생하는 경우, 국가인권기구는 보다 집중된 경각심과 독립성을 갖고 그 권한을 엄격히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며 “국가인권기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예외없이 인권, 민주원칙에 대한 존중 및 법치주의의 강화를 증진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분쟁 또는 비상상황 속에서 국가인권기구의 활동은 긴급한 인권침해에 적시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감시, 기록, 성명 발표 및 언론을 통한 정기적인 세부보고 등을 해야 한다”고 돼 있다.

10일 의결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 표명의 건’ 결정문 반대의견에서 남규선·원민경·소라미 위원은 “(파리원칙이) 취약계층의 권리 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한층 높은 경각심과 독립성을 갖고 업무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러한 일반논평에서 밝힌 인권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용원 상임위원은 보충의견에서 “유엔 인권 기구들에 맹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지역 인권 및 개발단체가 모인 포럼아시아(Forun-Asia)와 아시아 국가인권기구 감시 NGO 네트워크(ANNI)도 19일 공동성명을 내고 “인권위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을 권고한 결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려는 국가인권기구의 입장은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신뢰성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며 “파리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A등급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국가인권기구로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규탄하는 성명을 즉시 발표해야 한다”며 “비상사태 기간 동안 수행된 관련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내 단체들도 잇따라 비판에 나섰다.

군인권센터는 채 상병 사건 은폐 의혹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을 인권위가 외면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죄 없는 박 대령을 상대로는 긴급구제의 길을 막기 위해, 내란범들을 상대로는 긴급구제를 해주기 위해 제멋대로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성명을 내고 “다수의견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윤석열측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위헌적이고 반인권적인 결론을 먼저 내리고, 이에 따라 이유를 짜맞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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