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어민 강제북송 정의용·서훈 1심 ‘선고유예’

2025-02-20 13:00:33 게재

“북한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

“처벌보다 재발막을 제도개선 필요”

문재인정부 당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이 1심에서 징역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허경무 부장판사)는 19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 징역 10개월,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징역 6개월을 선고하면서 모두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뉘우치는 모습이 뚜렷할 때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이다. 범죄기록(전과)이 남는 집행유예와 달리 선고유예는 2년간 재범을 저지르지 않으면 전과가 남지 않는다.

이 사건은 문재인정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선장과 선원 등 16명을 살해하는 등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강제로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냈다는 의혹이다.

정부는 동해상에서 탈북어민 2명을 나포한 지 이틀만인 2019년 11월 4일 노 전 실장 주재로 청와대 대책 회의를 열어 이들의 북송을 결정했고, 나포한 지 닷새 만에 북송했다.

검찰은 정 전 실장 등이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를 가진 북한 주민에 대해 강제 북송을 결정한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 공무원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2023년 2월 재판에 넘겼다.

반면 정 전 실장 등은 재판과정에서 “이들이 정부의 심사를 받지 않은 ‘잠재적 국민’이거나 ‘전쟁 포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헌법 3조를 근거로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북한 주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에 포함된다”고 판단, 북송어민들의 의사에 반해 북송한 것은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재판받을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것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북한 주민 한 명은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주민의 자녀로 태어났고 다른 한 명은 고아라서 부모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국적법상 기아, 버려진 아이로 판단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전 실장 등이) 신속성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틀 만에 북송을 결정하고 닷새 만에 실제로 북송했다”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책임을 지게 만드는 형사사법 절차가 모두 무용한 것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 주민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흉악범을 격리해 국민 안전을 보호한 것’이라는 정 전 실장 등의 주장도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북한 주민들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주장도 받아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 진정한지 판단하기 시작하면 국가가 국민을 선별해서 받을 수 있는 위험성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재판부는 북한 주민들을 체포·감금한 혐의, 경찰특공대원과 통일부 직원 등에게 강제 북송이라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혐의 등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분단 이후 이런 사건에 적용할 어떤 법률이나 지침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일을 담당한 사람만을 처벌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 든다”며 “선고를 유예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남북 분단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법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공백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며 “이런 사정은 현 정권에도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벌보다 제도가 개선돼 이런 분쟁이 반복되지 않는 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훨씬 유익하다”며 사회 공론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정 전 실장은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밝혔고, 검찰은 피고인들이 범행을 일체 부인하고 있어 선고유예 결정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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