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호황, 닷컴버블-붕괴와 다를까

2025-03-11 13:00:19 게재

4반세기 전 오늘 거품 정점 … 이후 2년여간 급락

WSJ “생산성 향상 토대 마련이라는 값비싼 교훈”

정확히 25년 전 오늘(미국 현지시각 10일) 나스닥 지수는 5048.62로 닷컴버블의 정점을 찍었다. 5년 만에 500% 넘게 상승했다. 하지만 뒤 이은 붕괴는 급작스럽고 사나웠다.

당시 개인 투자자들은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의 미래를 보고 투자했지만 많은 돈을 잃었다. 미국경제도 흔들렸다. 펫츠닷컴(애완동물 관련기업)과 더글로브닷컴(SNS), 웹밴(인터넷 슈퍼마켓) 등 주가 고공비행을 누렸던 기업들은 무너졌다. 오늘날 일부 투자자들은 인공지능(AI)과 관련해 그같은 사이클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각) “설령 그렇다 해도 닷컴버블 붕괴와 관련해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있다”며 “인터넷 초기의 과도한 열풍은 결국 옳은 것임이 증명됐다”고 전했다.

일부 투자자들의 두려움은 이해할 만하다. 선도적인 AI 기업들은 시장에서 수백억, 수천억달러 가치를 인정 받는다. 그중 일부는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그같은 기업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WSJ는 “하지만 닷컴버블과 붕괴는 야심찬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장기적으로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전세계 가장 높은 가치 기업들은 닷컴시대 씨앗을 뿌려 성장한 기술기업들”이라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닷컴버블은 혁신기술의 신속한 확산을 가속화한 이른바 ‘좋은 거품’의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튤립구근이나 비니베이비즈 인형, 애리조나사막의 주택단지 등 실물경제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는 자산에 투기하는 ‘나쁜 거품’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기술혁명과 금융자본: 버블과 황금시대의 역학관계(Technological Revolutions and Financial Capital: The Dynamics of Bubbles and Golden Ages)’ 저자 카를로타 페레즈는 “2000년 인터넷을 위한 광섬유케이블은 1900년대 초 전력망 구축, 1800년대 철도 부설, 1700년대 후기 운하 건설 붐과 유사했다”며 “호황 뒤에 붕괴가 따랐지만, 그같은 네트워크는 새로운 시장을 일구기 위한 기름진 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AI 혁신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막대한 자본투자를 하고 있다. 문제는 그같은 투자가 경제를 풍성케 하는 생산성 향상, 즉 좋은 거품의 요소로 이어질 것이냐다. WSJ는 “판단을 내리기까진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시적인 성과들이 많다”고 전했다. 검색은 더 스마트해졌다. AI봇들은 소프트웨어 코드나 이력서 등 작성할 수 있다. AI는 항공기를 예약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모임을 주선하고 똑똑한 조수처럼 행동하는 등 여러 일을 대리한다. 향후 수년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물론 패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부 AI 기업들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미국 벤처투자기업 세콰이어캐피털의 데이비드 칸은 최근 “AI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정당화하려면 그에 비례한 매출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공백이 크다. 이는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막대한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라고 썼다.

WSJ는 “과도하게 가치가 부풀려진 AI스타트업들이 결국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이 채택하는 획기적 아이디어들을 전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 기업이 ‘제너럴매직’이다. 이 기업의 공동창업자 마크 포랫은 1994년 디지털 터치스크린 휴대폰을 상상했다. 스마트폰의 원형으로 불리는 기기를 출시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였다. 당시 디지털 휴대폰 네트워크는 없었다. 전화선을 연결한 모뎀에 접속하는 시대였다.

이 구상을 현실화한 건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2007년 첫 아이폰을 공개했다. 당시엔 무선 휴대폰과 인터넷이 범용화된 상태였다. 플래시메모리는 저렴했고, 컴퓨터 칩은 더 작아지고 빨라졌다. 반응속도가 빠른 터치스크린도 이미 개발된 상황이었다.

스마트폰 혁명이 도래했을 때, 이를 가속화한 인물들도 제너럴매직 출신 토니 파덴과 앤디 루빈이었다. 파델은 애플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개발을 도왔다. 루빈은 전세계 가장 큰 모바일운영체계인 안드로이드를 창업했다.

AI 부문에 수천억달러가 투자되면서 일각에선 거품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페레즈는 “거품이든 아니든 AI는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며 “전선이 증기력을 대체한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너럴매직은 2002년 파산했다. 제너럴매직의 휴대폰은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기에 이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거의 없었다. WSJ는 “하지만 제너럴매직이 연구했던 또 다른 예지적인 아이디어 역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의 업무를 대신할 ‘AI에이전트’”라며 “당시 그 프로젝트를 연구했던 제너럴매직 엔지니어 존 지애넌드레아는 현재 애플 AI부서를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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