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사회 중장년일자리
문과 중장년 여성도 IT 취업,제2의 인생 연다
IT는 경력자만 한다? “중장년 바라보는 인식 바뀌었다” … “이직이 적어 안정적 인력관리가 가능”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후 매년 1%씩 고령인구가 증가해 2045년에는 그 비중이 37.3%에 이르러 세계에서 고령인구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급격한 고령화는 경제·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 한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사회의 양극화와 격차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포용성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초고령사회에 걸맞은 전략이 필요하다.
통계청 지난해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70세) 10명 중 7명은 계속 일하기를 원하고 이들이 희망하는 평균 근로연령은 73.3세로 나타났다. 이는 많은 중장년층이 정년 이후에도 경제활동을 지속하기를 희망하지만 이를 위한 적절한 일자리와 지원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면서 이·전직 준비 부족, 주된 일자리 이탈에 따른 노후소득 불안 등의 문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장년층을 위한 고용노동 전문기관인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장년을 위한 IT 분야 생태계 만들고 싶다”
#. 2022년 최 모(43·여)씨는 4년을 다녔던 중소기업이 재정악화로 문을 닫으면서 퇴사했다. 그는 20대 중반에 영어강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30대 초·중반엔 카피라이터, 30대 후반부터는 콘텐츠매니저로 일했다. 40대에 접어든 그는 갑작스런 실직에 막막했다. 답답한 나날을 보내던 지난해 2월 노사발전재단 서울서부중장년센터(소장 임정아, 서울서부센터)의 ‘소프트웨어 테스터’ 양성과정 안내문자를 받았다. 문과출신이라 생소했으나 호기심이 생겼고 기존 업무와 일정 관련도 있었다. 최씨는 2개월 교육과정을 마치고 채용행사 통해 지난해 6월 국내 소프트웨어 테스터업체 1위 기업인 와이즈와이어즈에 취업했다. 문과출신 40대가 정보통신(IT)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서울서부센터가 있는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에는 IT관련 회사들이 많다. 중장년 여성들을 위한 IT 특화과정을 모색하다 지난해 3월 소프트웨어 테스터 양성과정을 개설했다.”
임은경 서울서부센터 책임컨설턴트의 이야기다. 소프트웨어 테스터는 소프트웨어 개발 후 제품 출시하기 전에 정상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다. 최근 소프트웨어 테스트 시장 규모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적합한 인재를 채용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리고 젊은층은 이직률이 높은 점이 애로사항이었다.
서울서부센터는 2023년 말부터 ‘중장년 여성 IT 특화과정’을 기획했다. 서울서부센터는 티벨의 조언을 받으며 55개 회원사가 참여한 소프트웨어 테스팅협회(협회), 직업훈련을 맡고 있는 중부기술교육원과 ‘중장년 여성 IT 특화과정’ 추진을 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중장년 여성 대부분이 소프트웨어 테스터에 대해 생소한 분야로 인식하고 있어 직무설명회를 진행했다. 반응이 좋았고 관련 문의도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3개 기관은 ‘소프트웨어 테스터’ 양성과정을 본격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중장년 채용 의사가 있는 티벨 등 기업 5곳의 수요를 파악해 교육과정 운영 및 사업장 현장실습 등을 통해 관련 분야 경험이 없는 중장년층도 진입을 통해 충분히 근무할 수 있도록 역량 개발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소프트웨어 테스터 양성과정에는 16명의 중장년 여성이 참여했다. 지난해 3월 서울서부센터에서 직무 기초교육과 직무 소양교육을 진행하고 중부기술교육원에서 두달간 이론과 실습교육이 이어졌다. 티벨 등 협회는 참가자들의 현장실습을 도왔다. 과정을 마친 뒤 구인구직 만남의 날에는 5개 기업이 면접에 참여해 소프트웨어 테스터업계에 7명 등 10명의 중장년 여성이 취업에 성공했다. ‘소프트웨어 테스터 양성과정’ 설계부터 실행까지 전과정에 참여한 티벨 김완수 부사장은 “비전공자 채용은 티벨에게도 모험이자 도전이었다”면서 “IT 분야이다 보니 중장년이라면 경력자여야 가능하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두달 교육을 받으니 비전공자들도 역량이 몰라보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2015년 설립된 티벨은 교육·통신·금융·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품질향상을 위해 전문 테스트 서비스를 한다. 테스트 자동화와 인공지능 플랫폼 등 스마트 솔루션도 개발하고 있다.
임 책임컨설턴트는 “채용과정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중장년 여성들이 보여준 열정과 간절함은 남달랐다”며 “취업한 뒤에도 일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 기대이상이었다는 기업들의 평가”라고 전했다.
김 부사장은 “중장년내일센터를 통해 취업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아 마인드셋이 잘 돼있기 때문에 보통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사람을 찾는 것과 달랐다”면서 “교육과정을 마치고 취업한 여성 근로자는 업무경력이 2~3년 지나면 관리자로 충분히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올해도 서울서부센터와 함께 소프트웨어 테스터 과정을 추가 운영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참여했던 기업들도 재차 참여해 중장년 여성들을 채용하겠다는 의지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IT 분야에서 중장년이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잿더미가 된 공장, 중장년 신입과 재건했다”
#. 강원 횡성군 치악산 자락에 있는 케이프라이드는 2023년 2월, 사업 확대를 위해 증축한 신설공장과 기존공장 전체가 소실될 정도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재건에 나섰으나 청년인구가 적은 지역 특성상 신규인력 확보가 어려웠다. 게다가 직원 20여명이 한꺼번에 그만두면서 생산시설 재가동을 위한 인력부족을 겪었다. 2차 육가공품인 양념육 분쇄가공육 소시지 등을 생산하는 케이프라이드는 이러한 위기 속에 노사발전재단 강원중장년내일센터(소장 신민화, 강원센터)의 도움으로 재건할 수 있었다.
강원센터는 사업주지원 컨설팅을 통해 커리어 컨설턴트가 근로환경과 채용여건 등을 진단한 뒤 일자리 컨설팅을 했다. 컨설턴트는 케이프라이드에 채용 연령기준을 63세로 늘릴 것을 제안했고 회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강원센터는 원주고용센터 강원광역새일센터 원주시와 협업해 2023년 10월 케이프라이드를 위한 기업설명회 및 현장면접 행사를 진행했다.
강원센터는 참여자 80명에게 기업 소개 및 지원할 수 있는 직무, 근무여건들을 안내해 단시간 내에 일할 의지가 있는 적합 후보자를 모집해 채용으로 성사시켰다. 특히 취업을 앞둔 중장년을 대상으로 새 직장에서 원활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직장 내에서의 근무태도 및 마음가짐, 의사소통 방법 등을 사전교육을 했다.
케이프라이드는 40대 3명, 50대 25명, 60대 이상 15명을 포함해 46명을 채용한 덕분에 차질 없이 생산시설을 가동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기준 중장년 근로자는 전체 고용인원 211명 중 157명(74.4%)이 40대 이상 중장년이다.
김현준 케이프라이드 본부장은 “중장년층이 가진 강점이 청년층에 비해 추진력은 덜하지만 일처리가 꼼꼼해 결과물이 좋고 무엇보다 이직이 적어 안정적으로 인력관리가 가능하다”며 “큰 화재로 공장을 재건하고 직원의 대량 이탈로 인력수급까지 막막한 실정이었는데 강원센터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에 지금의 모습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