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반쪽짜리’ 전락
조직권·예산편성권 없어 갈등
“지방의회법 제정” 한목소리
지방의회 인사권이 독립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무늬만 독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권과 예산편성권이 없는 의장이 인사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사권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지방의회법 제정 등을 통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이후 전국 곳곳에서 갈등과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지방의회 인사권을 둘러싼 갈등은 주로 승진 증원 파견 등 공직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로 나타났다.
최근 강원 횡성군의회는 의장이 고향과 학교 후배를 사무관으로 승진시킨 일로 시끄럽다. 승진한 공무원은 6급을 달고 5년 만에 사무관이 됐다. 결격 사유가 없는 고연차 1순위를 제친 파격 인사였다. 횡성에서는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려면 통상 10년 정도가 걸린다.
경기도의회와 경기도는 지난해 공무원 정원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도의회가 사무처 공무원 정원을 10명 늘리는 조례를 통과시키자 도가 재의요구를 검토하며 반발했다. 결국 올해 초 양측은 최종적으로 도의회 공무원 정원을 8명 늘리고, 도 공무원 정원은 8명 줄이기로 합의했다.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부산시가 시의회 사무처장을 개방형 공모를 통해 뽑은 것도 인사권 갈등의 한 단면이다. 시가 추천한 인사를 시의회가 반대하면서 공모 방식이 채택됐다. 응모한 후보 2명도 공교롭게 시와 시의회가 각각 추천한 인물이다. 결국 시의회 의도대로 인사가 진행됐지만 향후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충남 천안시는 의회 파견 공무원들의 수당이 문제가 된 사례다. 인사권 독립으로 의회 직원 상당수가 파견직이 됐는데 시행 초기 2년간 파견수당 35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직원들이 반발하면서 소급해 지급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시의회에서 집행부로 파견간 직원들 수당은 여전히 미지급 상태다.
이처럼 의회와 집행부 간 인사 갈등이 벌어지자 서로 파견을 꺼리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남 통영시의회는 6급 직원을 집행부로 강제 파견시켰다가 경남도 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으로 복귀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집행부와 구의회 갈등이 결국 구의회 파견 공무원의 복귀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파견 문제는 의회 인력풀이 부족해 생기는 문제다. 우선 지방의회의 한정된 인력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타 지방의회와 인적교류를 추진해야 하지만 아직은 여의치 않다. 이와 관련 울산연구원은 최근 ‘울산시의회, 구·군의회 간 인사교류 방안’ 연구용역을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연구용역에서도 인사교류 필요성을 묻는 설문 결과 필요하다는 답변이 63%로 많았지만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는 답변은 24.6%에 불과했다. 인사교류가 실제 성사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과거 인사권 독립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의장이 추천하고 단체장이 임명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 지방의회 관계자는 “인력풀이 한정된 상황에서 인사권 독립은 의회 기능을 강화하기보다는 역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의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방의회의 인사권은 집행부에서 독립했지만 조직 및 예산권은 집행부인 시·도에서 행사하고 있는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관계자는 “조직권과 예산편성권이 없는 구조적 문제가 계속되면 집행부와 지방의회의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광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의회가 주민들을 대변해 집행부인 지자체 견제·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일·최세호·곽태영·곽재우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