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수요관리 정책을 활용한 에너지안보 강화

2025-03-19 13:00:00 게재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자원무기화 확산 등으로 인한 글로벌 물가상승이 정부와 기업은 물론 우리 가정의 일상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 결과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등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급해지면서 에너지안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에너지 자원의 약 95%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국제정세 변화로 인한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따라서 정부와 사회는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안보 전략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에너지안보는 적정한 가격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에너지안보 개념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돼왔다. 지금은 지정학적 위기에다 에너지전환 과도기에 발생하는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주로 공급 측면에서 에너지원을 다변화하고 자원을 비축하며 해외 자원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을 펼쳐왔다. 사실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져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국 내 자원이 거의 없고, 지리적으로 사실상 섬에 가까우며 신재생에너지에 친화적인 기후나 토지 조건도 부족하다.

따라서 공급 중심의 전략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공급보다는 수요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일 것이다.

수요정책, 에너지안보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

최근 저명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연구팀은 주요 14개국을 대상으로 공급정책(공급원 다양화, 연료 대체)과 수요정책(운송 부문의 전기화, 건물 효율 향상)의 에너지안보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운송 부문 전기화와 건물 효율성 향상과 같은 수요정책이 공급정책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실제 노르웨이는 운송 부문 전기화를 적극 추진해 에너지 소비를 약 10% 절감시켰고, 독일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건물 단열 성능을 강화해 에너지 소비를 약 5%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전통적 공급정책은 미미한 성과를 보였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공급원 다변화를 추진했지만 대부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바이오연료, 수소 등 연료 대체 전략 역시 제한적 성과에 머물렀다.

특히 경제 규모가 크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서는 공급 중심 정책만으로는 장기적인 시스템 효율성 향상과 경제적 이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구조상 수입의존도를 근본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에너지 수요 자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효율화하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수요정책의 효과가 뛰어난 이유는 에너지 시스템의 특성 때문이다. 에너지는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는데 최종 소비단계에서 조금만 절감해도 생산단계에서는 훨씬 큰 절감 효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최종 에너지 소비를 5% 줄이면 생산 단계의 1차 에너지를 약 10% 절감할 수 있다. 즉 공급단계보다 소비단계에서의 개입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게다가 수요정책은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도 이점이 크다. 앞서 언급된 연구에 따르면 공급정책 가운데 공급원 다양화의 탄소배출 감소 효과는 거의 없었고, 연료 대체 전략도 11% 감소에 그쳤다. 하지만 수요정책인 운송 전기화와 건물 효율 향상은 각각 12%와 13%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나타냈다. 이는 수요 중심의 접근이 에너지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수요정책 중심으로 에너지안보 계획 수립을

또한 수요정책은 국가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장점이 있다. 공급원 다양화와 같은 정책은 타국과의 협상이나 국제적 합의가 필수적인 반면, 수요정책은 국내 제도 개선과 기술 발전을 통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가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공급 중심에서 벗어나 수요 중심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요 중심 정책은 단순한 소비 감소를 넘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적 환경적 이점을 제공한다.

정부는 이러한 전략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수요정책 중심으로 에너지안보 계획을 수립하고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다가오는 에너지 및 기후위기에 더욱 회복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다.

우종률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융합에너지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