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1 경쟁 뚫은 ‘할매 래퍼’는 누구?
칠곡 할머니 힙합그룹 ‘수니와 칠공주’
혈액암으로 사망한 고인 후임자 선발
“이장도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합격하면 칠곡으로 이사하겠습니다!”
지난 18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 3층 강당. 한상선(78) 신3리 이장을 비롯해 대구에서 걸음을 했다는 강정열(75)씨 등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칠곡과 대구 출신 70·80대 할머니들 경쟁으로 인해 강당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할머니 힙합 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새로운 구성원을 뽑는 실기시험 현장이다.
19일 칠곡군에 따르면 ‘수니와 칠공주’는 지난해 10월 혈액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고 서무석 할머니 후임자를 선발했다. 지천면에 사는 이장 할머니는 물론 칠공주 인기에 힘입어 탄생한 또다른 래퍼그룹 ‘텃밭 왕언니’를 이끄는 성추자(81)씨도 단원복을 입고 참가했다.
젊은이들 못지 않게 염색한 머리에 화려한 장신구를 두르고 등장한 강영숙(77)씨는 무대에 올라 “힙합은 멋이다”를 외쳤고 칠곡 이주를 선언한 강정열씨까지 모두 6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강씨는 특히 공개 시험을 준비하면서 칠공주 공연이 열리는 마을 경로당을 찾아 비법을 배우고 독학으로 랩 연습을 해왔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공개 실기시험은 단순히 가창력만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자기소개부터 받아쓰기는 기본이다. 동시 쓰기와 트로트 한곡 부르기, 그리고 막춤까지 참가자들이 통과해야 할 관문은 여럿이었다.
참가자들 경합이 끝나고 합격자 발표를 앞둔 즈음, 강당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우정 심사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봉투를 열고 새로운 구성원으로 ‘이선화 어르신’을 호명했다. 칠공주가 활동했던 거점인 신4리 이웃마을인 신3리에 거주하는 77세 주민이다.
경쟁자 5명을 제친 이씨는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올랐다. 그는 평소 칠동주 활동에 관심을 갖고 함께 활동하는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이씨는 “기존 멤버들을 친언니처럼 모시고 열심히 활동해 보겠다”며 “좋아하는 김소월 시인의 시를 랩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칠공주 선배들은 그들을 상징하는 모자와 의상을 이씨에게 전달하며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이어 신입 구성원과 함께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을 펼쳤다. 주민들에게 인기 있는 ‘우리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가 선발전 대미를 장식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수니와 칠공주의 새로운 출발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줄 것”이라며 “수니와 칠공주가 ‘K-할매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축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