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미국 반도체산업, 빼앗긴 게 아니다

2025-03-20 13:00:04 게재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세계경찰을 자처하며 희생하고 정의를 외치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기존 동맹과 우방에냉정하게 관세를 부과하는 모습 등을 보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계질서 유지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반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을 다시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 희생을 멈추고 이렇게 실리를 추구하겠다는데 비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관계는 명확히 하고 대화를 통해 ‘아메리카 퍼스트’를 실현하는 방법은 없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반도체산업은 더욱 그렇다. 반도체는 현재 많은 산업에서 주요 부품으로 사용되고 앞으로도 더 많이 사용될 예정이다. 게다가 항공 우주를 비롯하여 로봇 등 첨단산업에서도 핵심부품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반도체를 제패하는 국가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자주 언급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환경오염 심하고 부가가치 낮은 제조 분야를 한국과 대만에 넘긴 것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산업을 빼앗아 갔다”라고 주장했으며, 최근에는 한국도 그 일부를 빼앗아 갔다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국은 한국과 대만에 반도체산업을 빼앗긴 것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미국은 반도체산업을 빼앗기지 않았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미국 기업들이 환경도 보호하고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한국과 대만을 이용한 것일 뿐이다.

우리 언론에 비친 반도체 제조 공장이란 먼지 한 톨 없는 클린룸에서 하얀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자동화된 기계를 관리하는 최첨단 시설이다. 비록 생태계에 혼란은 왔지만 반도체 공장 주변 하천에 24시간 쏟아지는 온수 속에서 열대어가 살 수 있을 만큼 폐수처리가 확실하다. 더욱이 반도체는 생산공정에 사용되는 기계가 모두 전기로 작동하기 때문에 다른 제조업에 비해 직접 배출하는 환경오염 물질이 적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반도체 제조 공장이 처음부터 이런 깨끗한 모습은 아니었다. 반도체가 처음 개발된 당시에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 사람이 직접 실리콘 웨이퍼를 화학물질에 담그는 작업을 했다. 웨이퍼를 가공하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독성이 강해서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공장 주변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과 대만에서 각각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 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미국 기업들은 반도체 제조를 이들 국가에 넘겼다. 이후 미국에서는 반도체를 직접 제조하지 않고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가 발달했다. 최근 반도체 제조 분야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이제야 반도체산업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억지일 뿐이다. 미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팹리스는 남겨두고 환경오염이 심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 분야를 한국과 대만에 스스로 넘겨준 것이지 빼앗긴 것이 절대 아니다.

현재 구축된 반도체 공급망 경제적 효율적 생산 방향으로 최적화된 것

트럼프 대통령은 빼앗긴 반도체 제조업을 되찾기 위해 관세를 부과해 미국 내 생산공장을 짓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와 억지주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역시 대화가 필요하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오해는 바로잡고 상호 발전할 수 있는 협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현재 구축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반도체를 가장 경제적이며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것을 미국으로 모두 가져가려는 시도가 결국은 반도체산업 발전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