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사교육 신기록이 쏘아 올린 징비록

2025-03-21 13:00:00 게재

“초등 1년생 딸과 다섯살 아들의 학원비로 한 달에 324만원을 쓴다.” 배우 김성은의 이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것도 324만원은 중학생인 첫째 아이의 사교육비를 제외한 금액이란다. 돈도 돈이려니와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가짓수가 너무 많다.

김성은의 딸은 11개 학원에 다닌다. 영어 수학 독서 논술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학습지 축구 생활체육에다 방학 때는 추가로 리듬 줄넘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운다. 아들은 영어유치원생이다. 별도로 수학과 학습지 공부를 하고 미술도 배운다. 김성은은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가 지난달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밝힌 내용이다.

방송인 현 영이 공개한 딸의 채드윅 국제학교 학비에 다시 입이 딱 벌어졌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초등과정이 4646만원, 중등과정이 4993만원이다. 국내 대학 연간 평균 등록금 800만원의 몇 배인가. 채드윅은 인천 송도에 있는 미국 교육과정의 외국교육기관이다. 현역 기자로 일할 때 취재를 가본 적이 있다. 미국학교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학비에다 기숙사비, 여러 비용을 포함하면 연간 부담액이 ‘억 소리’ 난다. 그런데도 못 들여보내 안달인 학부모가 줄을 섰다.

‘4세 고시’ ‘7세 고시’ 해외 언론까지 보도

일부 연예인의 얘기는 물론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경제력에 따라 사교육이 극단화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최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유아 사교육비를 보자.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절반이 사교육을 받는다. 월평균 33만원인데, 지난해 7~9월 석달 동안만 총 8154억원이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3조2616억원이다. 영어유치원은 월 154만원, 놀이학원은 116만원이나 든다. 서울 강남에서는 기저귀 차고 4세 고시(영어유치원 레벨테스트), 수학·영어 ‘7세 고시’란 말까지 유행한다. 이런 괴이한 현상은 외국 언론에도 보도됐다.

지난해 초·중·고생 사교육비는 또 치솟았다. 29조2000억원이다. 신기록을 찍었다. 그나마 유아와 n수생을 뺀 액수다. 학생수는 줄었는데 사교육은 불어났다.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은 사기(詐欺)였다. 그러고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과도 않는다. ‘공교육 어쩌구’ 하는 현 정부의 정책은 총체적 실패다.

그렇다면 사교육은 대입이 끝나면 끝날까. 어림없다. 대학생도 만만찮다. 영어학원 공무원학원 취업학원 편입학원 로스쿨학원…. ‘대체 대학에선 뭘 가르치느냐’라는 비판이 나온다. 로스쿨생까지 ‘변시’(변호사 시험) 학원에 다닌다. 그래도 변시 합격률이 전체 응시생의 50%에 불과하다.

유아부터 초·중·고생, 그리고 대학생까지 ‘사교육 텐트’에 갇혀 있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가 잘못돼 있는 것이다. 저출생·저성장·양극화의 ‘똬리’에 사교육이 진을 친다. 원인은 다양하다.

학부모 입장만 보자. 자식에 대한 ‘지위경쟁’ 열망은 갈수록 강해진다. 자녀를 한 명도 채 두지 않는 ‘골드키즈(Gold kids)’ 시대에 부유층 학부모들은 사교육 지갑을 거침없이 연다. 좋은 학교,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가 늘지 않으니 ‘붉은여왕 효과(Red Queen Effect)’ 심리가 발동한다. 죽을 힘을 다해 뛰어도 모두가 뛰니 지금보다 두 배 더 뛰어도 겨우 제자리를 지킬까 말까한 심리 말이다. 그러니 돈 많은 기득권층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돈을 몇 배 더 쓴다. 사교육이 양극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데도 정부는 죽을 힘을 다해 뛰기는커녕 헛발질이다. 대통령은 무모하고, 교육계는 현자가 없고, 관료는 직언하지 않는다. “제 잘 났다”며 자리를 탐하는 ‘졸자(拙者)’들만 득실거린다. 의대 정원 파동, 대입 변경, 고교학점제 불안, 내신 5등급 같은 온갖 변수가 사교육 자양분이 된다. 사교육은 더 통통해진다. 학원 뺑뺑이로 세상을 시작한 아이들은 대학생, 심지어 로스쿨을 졸업해도 사교육을 벗어나지 못하는 뒤틀린 사회가 됐다. ‘복합골절 교육’의 자화상이다.

교육 양극화 악순환 끊을 대개조 시급

이제는 국가 교육의 틀을 대개조해야 한다. 초·중·고 교실, 교원양성, 대입, 로스쿨, 의대 파동, 등록금, 대학 경쟁력, 교육재정 등 각 분야의 총체적인 재설계와 대혁신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사교육 블랙홀인 대입은 안정성 예측가능성 지속성이 필수다.

한해 25만명도 태어나지 않는 시대다. 교육부에 더 이상 입시 권력 남용권을 줘서는 안된다. 연예인 김성은과 방송인 현 영이 쏘아 올린 교육 얘기는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다. 우리 교육의 징비록이다.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