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감염병 X’의 위험…원헬스 체계 강화 시급

2025-03-24 13:00:22 게재

포유류로 번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인체 감염 전파 우려도 … 부처 간 협력 보강과 감시 고도화 필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야생 포유류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감염병 X(Disease X)’에 대한 경각심도 한층 커졌다. 20일 환경부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16일 전남 화순에서 주민 신고로 발견된 야생 포유류 삵에서 H5N1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2024년 9월 3일 인천공항 2터미널에서 열린 감염병 X(Disease X) 대응 수도권 합동 훈련에서 국내 도착 항공기에서 가상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열 등 증상이 있는 승객이 발생했다는 가정하에 국립 인천공항 검역소 검역관이 해당 항공편에 탑승한 입국자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야생 포유류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은 전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동안 없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감염된 동물과 접촉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린 중증 환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19일 송대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바이러스학 전공)는 “전세계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포유류 간에 전파된 걸로 강하게 의심되는 사례들이 많이 보고된다”며 “과거에는 한 번 전파되면 해당 개체만 폐사한 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유럽 미국 등에서는 다양한 동물들이 영향을 받고 떼죽음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 간 전염되는 사례가 확인된 건 아니지만 잠재적인 위험성은 무시할 수 없다”며 “면밀하게 감시 체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본디 조류에서 감염된다. 포유류에서도 감염된다는 건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감염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이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에 적응하면서 변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전파력이나 병원성이 변화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전문가들이 조류인플루엔자의 인체 감염 전파나 대유행이 일어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경고하는 이유다.

감염병 X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2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미래에 대유행할 수 있는 가상의 신종 감염병을 지칭한다. 알파벳 X를 사용해 미지의 존재를 나타냈다.

16일 전남 화순군에서 발견된 삵에서 H5N1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됐다 . 사진 환경부 제공

◆역인수공통감염병 위험도 커져 =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에볼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코로나19) 등 각 시기별로 도래한, 그 시대의 감염병 X들이다. 문제는 코로나19가 마지막 감염병 X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 감염병 X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과거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더욱이 그 유형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는 동물에서 유래된 인수공통바이러스이자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로 인해서 사람 감염이 폭발적으로 유발이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려동물 감염 사례가 사람으로부터 전파되는 역인수공통감염병 위험도 커지고 있다. ‘원헬스(One Health)’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본질적인 대응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원헬스는 사람 동물 생태계 사이의 연계를 통하여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다학제적 협력 전략이다. 세계보건기구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환경계획(UNEP) 등과 같은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주요 7개국(G7) △주요 20개국(G2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과 같은 국제 경제협의체에서도 원헬스를 주요 의제로 다룬다.

우리나라도 원헬스 중요성을 강조한 지 오래다. 하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의 공식 학술지인 ‘주간 건강과 질병’에 실린 보고서인 ‘제3차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 2023-2027’에 따르면, 제2차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 중 원헬스 협력체계 구축 부문의 목표 달성률은 83.3%로 다른 과제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감염병 기본계획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질병관리청장이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해 5년마다 수립한다.

20일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원헬스 개념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다부처 간 통합적인 협력체계 구축은 필수”라며 “국회에서 관련 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2월 18일 서미화 의원 등이 발의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 기본계획에 기후변화로 인한 감염병 발생에 대응하기 위한 범부처·다분야·다학제 간 접근과 협업 방안을 담았다. 또한 원헬스 관련 협의기구를 설치·운영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예찰 검사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의 한 산란계 농장 주변에서 1월 6일 오전 관계자가 출입하는 차량 방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인공지능 등 활용해 발병 분석 속도 내야 = 새로운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감시 체계 고도화도 필수다. 한국의학회지의 논문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한 감시체계: 한국의 감염병 감시체계 방향’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감염병 감시체계는 강력하지만 자료 통합과 조정 강화, 대응 효율성 개선 등의 과제가 있다.

2024년 9월 3일 관계 기관 합동으로 감염병 X(Disease X) 대응 훈련이 이뤄진 인천공항 2터미널 내 검역대의 모니터에 해외 입국자들의 체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한 감시체계: 한국의 감염병 감시체계 방향’에서는 “한국의 감시체제를 강화하려면 여러 감시체계를 상호 연결하고 실시간 자료 공유를 개선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구현해야 한다”며 “중앙 집중형 데이터 플랫폼은 이러한 체제를 통합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하여 보다 빠른 발병 분석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나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의 자료 공유 네트워크를 통한 국제 협력과 상호 운용성을 개선하기 위한 표준화된 보고 형식이 필수라고 제언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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