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군을 효과적으로 문민통제 하려면

2025-03-25 13:00:15 게재

“지키는 자, 누가 지킬 것인가.” 이 오래된 질문은 실존적 힘을 가진 군대가 오히려 권력화되어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계심에서 출발한다. 군이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 해도, 민주적 통제 없이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발전하거나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게 되면, 오히려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저서 ‘군인과 국가'에서 “객관적 문민통제(Objective Civilian Control)”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효과적인 문민통제란 군의 고유 영역과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대로 군사 업무에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해 군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경우를 “주관적 문민통제”로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군의 전문성이 훼손되고 정치권도 불안정해진다고 경고했다.

헌팅턴의 모델은 군의 전문화를 통해 효율적인 국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위험요소도 존재한다. 문민의 통제가 최소화되면 군 조직이 ‘성역화’되어 민주적 견제가 어려워지고 특권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질적으로 헌팅턴의 모델은 군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문민에 충성할 것을 기대하는 구조이나 이는 일부 세력이 독주하거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욱이 현대처럼 군사 정치 사회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에는 군과 사회를 명확히 분리한다는 전제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

민주적 통제 없는 군, 민주주의에 위협

한편 사회학자 모리스 자노비츠는 ‘프로페셔널 솔저'에서 “실용적 프로페셔널리즘(Pragmatic Professionalism)”을 강조하며 군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기보다 사회와 통합되는 것을 더욱 중요시했다. 자노비츠의 관점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군인이 정치에 무관심하라는 뜻이 아니라 정당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민주사회에 책임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군과 사회의 조화는 필수적이다. 군 조직이 국민의 가치관과 동떨어지지 않을 때 쿠데타나 정치개입에 대한 유혹은 줄어들며 설령 문민권력이 부당하거나 위헌적인 지시를 내릴 경우에도 군은 헌법 가치에 비추어 올바른 판단을 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현대의 민군관계는 이 두 이론을 절충해 군의 전문성과 임무 수행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민주적 통제를 실효성 있게 작동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복잡한 안보환경 속에서 군과 사회의 조화, 국방 영역에서의 민주적 가치와 책임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기에 이 점에서 자노비츠의 접근이 가지는 시사점은 크다. 그가 말한 실용적 프로페셔널리즘은 군이 스스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목적을 내면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히 민간이 군을 통제하는 차원을 넘어, 군이 자발적으로 문민 통제에 협력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현실에 정착되면 군 지휘관은 위헌적이거나 비합리적인 명령에 대해 맹목적으로 복종하기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비추어 숙고하고 합리적인 조언을 제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또한 군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유지할 때 문민통제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군은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지 권력자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민통제는 제도와 법률의 뒷받침, 군인의 민주주의 의식, 민간 지도자의 책임윤리, 그리고 국민의 지속적인 감시가 결합될 때 비로소 온전히 구현될 수 있다.

문민통제 위한 제도 정비와 문화 성숙시켜야

우리 헌법과 법률에는 이미 이러한 원칙들이 담겨 있으며 지난 수십 년간 꾸준한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12.3 계엄사태는 그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냈다. 다시는 군이 민주 질서를 위협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문화를 성숙시켜야 한다.

문민통제는 단지 군을 통제하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지켜내는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뒷받침하는 군대, 그리고 그 군대를 책임 있게 통솔하는 문민정부'야말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문민통제의 지향점이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안보통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