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여야 동의’ 전제 추경 편성 주장…민주당 “편성권 국회 주나”
권성동 “여야 합의 1단계 먼저” 기재부 “여야 동의하면 즉시 편성”
늑장·찔끔 추경에 합의 전제까지 민주당 “책임 전가 전략이냐”
거대양당 이미 “3월중 편성” 합의, 기재부에 전달했지만 무력화
정부와 여당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여야 합의’나 ‘여야 동의’를 전제로 추진하기로 하는 등 기존 예산편성과정과 전혀 다른 절차를 주문하고 있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소 당혹해 하고 있다. 당정협의를 통한 예산(추경)안 편성 후 국회 심의를 통해 행정부는 예산편성권, 입법부는 예산심의권을 행사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거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요구했고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뒤늦게 10조원의 소규모 추경을 들고 나온 배경에 관심을 두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달 말까지 국회에 편성안을 제출하라는 여야 합의사항을 무시하고 추경 내용까지 여야가 합의해 올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우선 정부안이 들어오는 대로 심사에 들어갈 예정으로 정부에 빠른 추경안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1일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는 이미 1월부터 추경안을 준비하고 있었고 최근에는 추경 편성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소규모 추경안을 제안한 의도가 궁금하다”고 했다. 허 영 국회 예결위원장은 “예산편성권은 정부에 있는 것인데 여야 합의를 전제로 편성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허 위원장은 또 페이스북에 “한덕수 대행과 최상목 부총리는 예산편성권을 가지고 충분한 추경안을 편성해서 여야합의 운운 말고 즉각 국회에 제출하기 바란다”며 “한덕수 대행은 아직도 각 부처 추경소요도 파악하지 않으면서 국회가 4월내 처리해달라 종용할 수 있단 말이냐”고 따졌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에 ‘긴급현안 관련 경제관계장관간담회’에서 “정부는 시급한 현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속하게 집행가능한 사업만을 포함한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주요 편성 3대 분야로 △재난 재해 대응 △통상 및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산불피해 극복, 민생의 절박함과 대외현안의 시급성을 감안하면 ‘필수 추경’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여야가 필수 추경의 취지에 ‘동의’해 준다면 정부도 조속히 관계부처 협의 등을 진행해 추경안을 편성·제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권성동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은 야당이 원하는 추경 예산을 논의하지 말자고 한 적이 없다”며 “여야 간에 이견이 없는 시급한 현안 예산부터 1단계 추경으로 우선 처리하고 여야가 각각 원하는 예산은 충분히 협의해서 2단계 추경으로 처리하자”고 했다.
민주당은 민주당의 추경 의견을 자세하게 제시한 만큼 정부가 여당과 협의해 추경안을 빠르게 내놓는 것이 빨리 통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여야 합의나 2단계 추경론은 결국 민주당을 ‘발목잡는 정당’으로 몰아세우거나 추경을 주도하는 기획재정부 수장인 최 경제부총리 탄핵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기재부는 추경의 목적이 경기진작용이 아니라는 점을 못 박았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추경과 방향이 크게 다름을 확인해 준 셈이다. 전날 강영규 기재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추경의 목적 자체가 경기 진작용이 아니다”라며 “어려움에 처하신 산불 피해자분들에게 지원해 주는 게 당장 급하고, 지금 임박해 있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야의 이견이 특별히 심하지 않아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는 것들만 찾아 10조 원을 추산했다”며 “여야가 ‘동의’하게 되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준비해 임시 국무회의를 거쳐 빠르게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전날 민주당 기획재정위원들은 “정부 추경안 10조원은 시기와 규모 모두에서 한참 부족하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라며 “정부는 국회가 신속하게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추경안을 제출해 달라”고 했다.
이제 정부가 여야 합의나 동의를 고집할지, 이와 상관없이 추경안을 신속하게 내놓을 지가 관건이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탄핵정국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망가지고 있는데도 기획재정부 등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여야 동의나 합의를 전제로 예산편성을 한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거나 민주당이 발목잡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전략, 또는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 기재부 장관의 탄핵을 막거나 탄핵할 경우 추경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몰아세우려는 전략 쯤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는 “예산이라는 것은 세부 내용이 있는 것으로 국회에서 먼저 편성을 심의할 수는 없다”면서 “앞으로도 국회가 정해주는 방식대로 기획재정부가 편성할 것인지, 예산 편성권을 국회로 넘길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이 ‘신속한 추경편성’을 원하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민주당이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