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지도·홍수지도 다 공개하는데…

2025-04-08 13:00:05 게재

‘지반침하 위험지도’ 비공개 논란 확산

서울시 “현행법 비공개 규정, 불안 자극”

“위험정보 공개, 시민과 함께 예방” 지적

서울시의 지반침하 위험지도 비공개 방침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8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지도 비공개에 대한 시민 요구가 확산되자 정치권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주축이 된 새로운서울준비특별위원회는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의 비공개 방침을 비판하며 위험지도 공개를 촉구할 예정이다. 아울러 철저한 조사 없이 싱크홀 현장 복구를 시도하는 국토부에 대한 지적과 위험지도 비공개를 규정한 법개정을 촉구한다.

앞서 공공운수노조, 정보공개센터 등은 지난 2일 서울시청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지난해 8월 서대문구 싱크홀 사고 후 땅꺼짐 위험도를 5단계로 평가한 지반침하 위험지도를 만들었지만 공사 관계자 등에만 공유하고 일반 시민에겐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공개를 요구했다.

전문가들도 공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안전 분야 관계자들은 “시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불안심리를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면서 “하지만 위험 지역을 미리 알리고 전조 현상에 대한 제보를 활성화하는 등 시민과 함께 예방 대책을 세워 간다는 측면에서 공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일 서울 시청 앞에서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즉각 공개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간정보 비공개, 서울시 규칙 = 서울시도 사정은 있다. 시에 따르면 국가공간정보기본법 35조에 의거한 ‘서울시 공간정보 보안업무 처리규칙’에 따라 공간정보는 ‘공개제한’ 정보로 분류돼 비공개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반침하 위험지도를 만든 것도 일반에 공개하기 위해서가 아닌, 탐사 작업 등에 참고하기 위한 용도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침수지도를 예로 든다. 서울시는 2022년 대형 물난리를 겪은 뒤 침수지도를 제작했다. 당초 공개되던 침수지도는 집값에 영향을 끼친다는 집주인들 민원과 동네가 상습침수지역으로 낙인 찍힌다는 불만 등에 밀려 비공개로 전환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공개하지 않는 침수지도는 행정안전부 누리집에 버젓이 공개돼 있다. 환경부 누리집엔 홍수지도도 공개돼 있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중앙정부가 침수지도를 공개하고 있는데 서울시가 우려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안전 차원에선 공개 필요성이 더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31년전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 교량 안전 정보를 비공개했다. 참사 9년전 감사원이 성수대교 붕괴 위험을 알리는 감사 결과를 통보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무시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강 교량들에 문제가 있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 국민 불안과 국가 위상을 실추시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문제를 덮고 해결을 미루는 사이 교량 파손 부위는 확대됐고 끝내 교각이 무너졌다.

위험지도를 ‘안심 지도’로 바꾸는 사고 전환도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안전 분야 관계자는 “일본은 위험지역이란 표현 보다 안심구역이라는 표기를 많이 사용한다”면서 “이 구역을 ‘공공이 어떤 조치를 취했고 이런 방식으로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고 표시함으로써 불안을 줄이고 긍정적인 시민참여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비공개로 인해 시민들의 알 권리가 제한되고 이는 사고 발생 시 더 큰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난안전분야 관계자는 “공공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민은 이를 수용하기만 하는 일방적 전달 체계로는 복잡한 현대 도시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조 원장은 “공개를 통해 시민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시는 위험지역에 대한 관리강화 방안을 함께 발표해서 시민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사전징후 등 신고체계도 정비해서 시민 협조를 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험을 줄이는 ‘시민 참여형’ 안전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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