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대신 손끝과 코로 즐기는 꽃놀이 어때요

2025-04-09 13:00:01 게재

영등포구 봄꽃축제 ‘시각장애인 팸투어’

최호권 구청장도 하루 활동보조인 자원

“여의도 벚꽃이 어땠는지 눈에 선해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꽃길을 함께 걸어보고 싶었는데 몇년간 그러질 못했죠.”

3년 전 시각을 잃은 서울 서초구 주민 신원희(67·내곡동)씨는 “그 색을 못봐서 아쉽긴 한데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며 “집에 틀어박혀서 술만 마시는 동료들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호권 구청장이 축제 첫날인 8일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을 찾은 신원희씨가 촉각체험을 하도록 돕고 있다. 사진 영등포구 제공

신씨를 비롯한 시각장애인 12명이 8일 낮 벚꽃을 비롯한 봄꽃으로 이름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뒤편을 찾았다. 영등포구가 이날 개막하는 ‘봄꽃축제’에 시각장애인들을 초청해 꽃길과 함께 각종 행사를 즐기도록 한 참이다. 구를 비롯해 서울관광재단과 영등포구 사회복지협의회, 여의도에 소재한 페어몬트앰배서더호텔까지 손발을 맞춰 준비한 ‘봄꽃 동행 팸투어’다.

9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해 봄꽃축제부터 시각장애인들을 초청했다. ‘꽃은 눈으로 즐긴다’는 통념을 깨고 시각 대신 촉각 청각 후각 등 다른 감각으로 다양한 봄꽃과 축제 전반을 즐기도록 구상했다. 최호권 구청장은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 차별 없는 축제를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의도에는 벚나무 1886그루와 진달래 개나리 철쭉 등 13종 8만7859그루에 달하는 나무가 봄이면 한꺼번에 피어난다. 영등포구는 넓게 트인 한강을 배경으로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더해 지난 2005년부터 여의도 봄꽃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여의서로 1.7㎞ 구간을 봄꽃길로 시민들에 개방했다. 차량 통행이 없어 편안히 걸으며 다양한 봄꽃과 함께 거리예술공연을 즐길 수 있다. 걷다 지치면 마을정원사들이 준비한 정원과 청년기업 봉사단체가 함께하는 벚꽃길 카페 등에서 쉬어가면 된다. 인근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들이 준비한 미식정원,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체험도 기다리고 있다.

8일 저녁 함께 걷는 행사로 축제의 문을 열기 전 시각장애인들이 나섰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쏟아져나온 직장인들에 벚꽃 만개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온 내·외국인까지 붐비는 상황이었다. 장애인 활동을 돕는 동반자 12명까지 24명이 첫날 초청됐다. 해설사가 봄꽃길 걷기부터 거리공연 청각체험, 벚꽃 개화 시기를 알려주는 관측표준목과 봄꽃을 비롯해 각종 모형물을 손으로 느끼는 체험을 도왔다.

동반자들은 각자 짝꿍을 세심하게 챙겼다. 방향 안내며 꽃길 좌우에 펼쳐진 풍경과 나들이를 즐기는 시민들 표정까지 전달했다. 최호권 구청장도 1일 활동지원가를 자원했다. 요양보호자 자격증 보유자답게 동행 방법도 미리 배웠다. 봄꽃길 걷기에 이어 호텔측에서 준비한 랍스터샌드위치 등 간식까지 즐긴 뒤 팸투어가 파했다. 신창숙 지회장은 “꽃향기를 맡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손끝으로도 고운 벚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집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지만 걷기를 즐기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너무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즐기는 행사지만 주민들도 반긴다. 자원봉사차 현장을 찾은 대림동 주민 김정순(79)씨는 “봄꽃축제가 전과 비해 달라졌다”며 “먹거리 중심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까지 함께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시각장애인들과 동행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며 “여의도 봄꽃축제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주민들 일상을 화사하게 수놓으며 특별한 추억을 선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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