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재난은 ‘대비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한다

2025-04-11 13:00:05 게재

물과 불은 늘 인류 문명의 두 기둥이었다. 물이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냈다면 불은 문명을 앞당기기도 파괴하기도 했다. 불은 우리 삶에 스며들었지만 통제되지 않은 불은 항상 인류 최대의 위협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그 통제를 놓친 불 앞에 무릎 꿇었다.

산불은 결코 갑작스레 발생하는 돌발사고가 아니다. 봄철이면 예외없이 찾아오는 예고된 현상이다. 겨우내 쌓인 낙엽과 마른 나뭇가지들은 건조한 날씨 속에서 쉽게 발화되는 일종의 연료다.

봄철 강수량은 적고 습도가 낮으며 남쪽에 고기압 북쪽에는 저기압이 형성되고 그 틈바구니에서 일시적으로 강풍이 형성된다. 매번 산불에는 우연처럼 강한 바람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우연이 아니다. 남고북저의 기압패턴이 강풍과 고온건조를 유발하는데 항상 이 조건들이 완벽하게 겹치면서 산불과 강풍이 동행하는 일종의 산불 패키지인 것이다.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산불발생 요소는 세가지다. 첫째는 낙엽 고사목 풀과 같은 자연 속 연료들의 존재다. 둘째는 산소, 공기 순환이 빠르고 바람이 강한 지역은 연소가 급격히 일어난다. 셋째는 점화원이다. 이는 담뱃불 등 등산객이나 성묘객의 실화 심지어는 번개도 될 수 있다. 산불감시원의 말을 빌면 대부분은 사람의 실화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무능한 지도자의 무지가 낳은 인재

산불 확산의 주요 요인은 풍속과 지형 그리고 연료의 건조도다. 산의 능선을 따라 바람은 더욱 빨라지고 불은 바람을 타고 능선을 넘는다. 화염은 대류 상승기류를 만들어 위로 치솟고 이로 인해 산 아래의 산소가 빠르게 공급되며 연소속도가 더 가속화된다. 또한 불이 가까운 나무를 미리 가열해 스스로 발화하게 만드는 열복사현상도 산불 확산을 부추긴다. 이는 불이 붙지 않은 나무조차도 주변 온도에 의해 스스로 타기 시작하는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며칠 전 남부 지방을 덮친 유례없는 산불은 사상 최악의 규모로 재앙 수준이었다. 사상 최악이었다는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규모의 두배가 넘는다. 수만명이 대피하고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1000년을 견뎌온 고찰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이 와중에 산불진화에 투입된 헬기가 연이어 추락해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이는 자연재해를 넘어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우리나라는 산불진화용 항공기로 헬리콥터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강풍에 취약하고 야간운항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산불의 특성은 항상 강풍을 동반한다. 따라서 산불진화에는 큰 저수용량의 물을 빨리 채울 수 있고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야간운항이 가능한 고정날개 항공기가 훨씬 효율적이다.

경남도는 일찍이 소방 비행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수륙양용 비행기를 도입해 재난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후임 도지사가 돌연 소방 비행기 계약을 파기하고 주관 공무원까지 징계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 전임자의 판단을 간단히 뒤집어버린 무능한 후임자의 잘못된 선택이 이번 위기를 키웠다는 얘기다.

기술과 자원의 결핍은 결국 소방헬기의 무리한 출동으로 이어졌고 추락사고와 더불어 진화 실패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과거 폐기했던 비행기와 동일 기종의 도입을 재검토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무능한 지도자의 명백한 ‘무지’가 낳은 인재다.

실수 반복 않으려면 산불에 대한 시선 바꿔야

산불은 단순히 ‘산’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공동체의 삶과 문화재 생태계, 그리고 미래가 있다. 천년고찰이 사라졌다는 것은 단지 건물이 타버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들어 있던 정신과 시간 기억이 함께 사라졌다는 의미다. 불길은 자연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확산시키고 막지 못한 것은 결국 인간이었다. 무지는 자연 앞에서 면책이 될 수 없다.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 산불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재난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대비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한다. 그리고 다음 봄이 오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불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만약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불로 인한 불행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윤경용 페루 산마틴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