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눈 높이’에 턱없이 부족한 김병주 MBK 회장 사재출연

2025-04-11 13:00:27 게재

600억원 규모 지급보증 합쳐도 1000억원 안팎

정치권·업계, 경영 정상화에 2조원 출연 필요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재출연을 약속했던 김병주 MBK 회장이 국회 등의 압박에도 구체적인 재원 방안 등 자구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재출연 이행을 기다리던 홈플러스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피해자들이 결국 집단고발에 나서면서 이번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1차 고소에 이어 아직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피해자들을 추가로 모집해 2차 200명, 3차 600명을 목표로 계속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홈플러스와 MBK가 투자 피해 대책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피해자들은 특히 ABSTB를 상거래채권으로 분류하더라도 협력업체 납품 대금, 임금, 임대점포 정산금 등 법원 승인 하에 조기 변제 중인 다른 상거래채권에 비해 우선순위에 밀리는 데다 홈플러스 경영상황이 전액 변제를 낙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앞서 MBK는 홈플러스 기업회생 결정 이후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지난달 16일 김 회장의 사재출연과 ABSTB 잔액 4618억원 전액 변제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재출연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고, ABSTB 전액 변제 여부에 대해서도 확답을 피하고 있다.

MBK는 이와 관련해 법원에서 홈플러스와 카드사·증권사 협의 하에 ABSTB가 회생채권에서 유일하게 상거래채권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우선 변제’될 것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즉, 6월 12일까지 완성되는 홈플러스 회생계획안에 따라 채권자들의 합의를 거쳐 변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담보채권을 확보하고 있는 채권자와 협력업체 채권자들이 이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지급보증 사재출연으로 봐야 하나 = 투자은행(IS)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 큐리어스파트너스로부터 DIP(debtor in possession) 파이낸싱 방식으로 600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DIP 파이낸싱은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일종의 구제 금융이다. 대출 조건은 금리 연 10% 만기 3년이다. 홈플러스는 이 자금으로 미지급 소상공인 결제대금을 정산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개인자격으로 지급보증을 선다. 홈플러스가 갚지 못하면 김 회장이 대신 갚아야 한다. MBK측이 이를 사재출연으로 주장하는 근거다.

김 회장은 지난달부터 이미 사재출연을 해왔다. 홈플러스에 자금을 증여해 영세업체 2000여곳의 결제대금을 정산하는 등 구체적인 규모를 밝히지는 않지만 500억원 정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선 김 회장의 사재출연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선 적지 않은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 협력사 등에 지급해야 할 매출 대금은 오는 6월 이후로 정산 시점을 미뤄 놨다. 하지만 1~2월 발생한 매출 대금 중 미정산분을 당장 지급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4600억원 규모의 미상환 ABSTB는 상거래채권으로 분류해 전액 변제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선 갚을 돈이 없다.

시장에선 MBK와 김 회장이 약 1조5000억~2조원 규모의 사재를 투입해야 이해 관계자의 손실을 보상하고, 홈플러스 경영도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DIP 대출에 연대보증을 선 것을 두고서도 사실상 김 회장 돈이 한 푼도 투입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DIP 대출은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무보증 채권 중 변제 순위가 가장 앞선다. 즉, 다른 채권자들을 뒤로 밀어내게 되기 때문에 김 회장이 개인적으로 이를 부담하려면 홈플러스가 최악의 상황이 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비상대책위 이의환 상황실장은 “소상공인 2000여곳에 미정산금을 지불하는 것을 사재출연을 하는 것처럼 둔갑시키고 있다”면서 “사재출연은 공개적으로 말해 놓고, 규모도 정확히 밝히지 않고 푼돈으로 외상값 갚듯이 실행하는 게 사재출연이라고 할 수 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정산금을 갚으라는 게 아니라 사재출연으로 피해자 돈부터 갚으라는데 정말 너무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MBK 먹튀 저지! 홈플러스 사태 해결!” 노동자·입점업체 생존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야당 국회의원과 마트노조 조합원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금감원도 검찰 이첩 검토 중 = 사재출연을 통한 경영정상화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했던 금융당국과 정치권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해 김 회장의 사재출연을 포함한 실질적인 구제 방안을 이날까지 제출하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MBK와 홈플러스는 11일 현재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의 MBK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MBK의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 긴급 토론회’를 열고 “김 회장이 홈플러스에 1조원 규모의 투자와 2조원 규모의 사재 출연을 해야 한다”면서 “정무위와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경찰·검찰·국세청이 모두 나서서 100% 피해 보상을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MBK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달 중으로 검찰에 이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10일 기자들과 만나 “MBK건으로 대표되는 홈플러스의 일련의 사태에 대한 여러 문제 제기에 대해 저희가 확보한 자료가 있다”며 “검찰과 증권선물위원회와 소통하면서 절차에 따른 조치를 4월 중 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사태는 MBK나 홈플러스가 회생신청을 법원에 하기 전에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강등 여부를 사전에 알았거나, 회생 신청을 계획하면서도 ABSTB와 기업어음 등을 팔아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MBK는 신용등급 강등이 확정된 지난 2월 28일 이전에는 신용강등 여부를 알지 못했고, 홈플러스에 대한 회생신청도 그 후 준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감원은 MBK가 사전에 신용등급 강등 여부를 인지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원장은 “당장 검찰 고발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이달 중 통상적인 증선위 안건 상정은 어렵겠지만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한 달 이상 걸리는 증선위를 통한 검찰 고발보다는 패스트트랙(신속 수사 전환)으로 검찰에 이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결자해지 자세 우선돼야” = 이해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은 대규모 집회도 예고했다. 지난 8일 홈플러스 노동자와 입점업체들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과 손을 잡고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생존권 보장을 위한 기업회생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홈플러스에는 현재 직영직원 2만명과 협력업체 직원 등 총 10만명이 근무하고 8000여개의 임대매장이 있다.

공대위는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어 “MBK파트너스가 추진하는 이번 기업회생은 결코 ‘회생’이 아니라, 의도된 ‘기업 안락사’”라면서 “자신들의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와 입점업체의 생존권을 짓밟고, 국민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MBK는 홈플러스 기업회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노동자와 입점업체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진정한 기업회생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공대위는 내달 1일 MBK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 D타워 앞에서 3000명이 모이는 ‘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MBK와 홈플러스의 경영실패를 사회 전체가 고통분담한다는 것”이라며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한 임대료 조정과 인력 구조조정, 이자 삭감 등의 전제 조건은 사재출연 등 김 회장과 MBK의 ‘결자해지’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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