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건강 대응
폭염·산불·호우 증가…기후재난 건강피해 대책 시급
취약계층 기후재난에 따른 건강불평등 심화 … 전문가들 "정부-지자체-민간 연계, 대응매뉴얼 개발"강조
최근 전례없는 국내 산불로 피해 지역민들은 신체정신적·경제적 고통에 빠져 있다. 엄청난 속도의 바람을 타고 번진 불은 순식간에 광범위한 지역을 태웠다. 산불재난은 올해 미국 일본 등에서도 충격을 줬다. 2018년 폭염 경험, 2020년 국내 최장의 장마, 2020년 초부터 3년 가까이 코로나19 세계대유행 등과 더불어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 현상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증가됨에 따라 질병발생과 건강 위험성에 경종과 대비를 강조한다. 신종감염병 출현뿐만 아니라 전통적 감염병, 그 밖의 질병 발생과 악화 등 그 파급력을 크게 하고 광범위한 피해를 가져 올 것으로 본다. 기후재난에 사회 대응력을 키워야 할 필요성과 시급성이 높아졌다. 관련해서 지난 11일 질병관리청은 기후보건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참석 전문가들이 제기한 기후재난에 대한 보건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지난해 9월 최악의 더위를 경험한 건강 허약자들은 올 여름에도 더위가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현상에 따른 개인 건강관리와 지역사회 보건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호장 단국대의대 교수는 “기후 변화 예측을 반영한 건강영향 연구와 기상재해의 경우 손상 뿐 아니라 정신적 영향을 포함한 급·만성질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종헌 성균관대의대 교수는 “기후재난 대비 국가차원의 건강보호와 중장기적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공중보건학적 관점이 담긴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폭염, 태풍, 산불, 호우 기후재난 일상화 = 기후변화에 따른 정부간 협의체(IPCC)는 각종 보고서를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지표면 평균 온도 1.5℃’ 상승하면 지구 전 지역 및 전 부문에서 기후변화의 다양한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IPCC는 2018년 ‘지구온난화 1.5℃’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파리협정 역시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을 1.5℃ 이하로 억제하는 것’으로 맞춰졌다.
하지만 2021년 발표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중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전지구 지표면 평균 온도가 이미 1.09도 상승한 것으로 추정됐다. 2011~2020년 지구 지표면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09도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1.5℃ 지구온난화 도달 시점이 ‘지구온난화 1.5℃’특별보고서에서 제시한 2030~2052년에서, 2021~2040년으로 10년이나 앞당겨졌다. 시작년도가 2021년이라는 점은 1.5℃ 상승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일 수도 있다고 암시한다.
IPCC 6차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에 따른 극한기상 빈도는 증가한다. 10년에 한번 오는 ‘폭염’ ‘호우’ ‘가뭄’의 경우 1850~1900년 1회였다면 이 기간 대비 현재 1℃ 올라 각각 2.8회, 1.3회, 1.7회 발생하고 50년에 한번 오는 폭염의 경우는 4.8회로 늘어났다. 향후 1,5℃ 오르면 각각 4.1회 1.5회, 2.0회 그리고 8.6회로 늘어날 것(표)으로 예측됐다.
국제기구의 예측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이미 전례없는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018년 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 111년 만에 서울 39℃”, 2020년 여름에는 “역대 최장 장마 54일 만에 끝…전국이 폭염”이라는 언론보도가 뉴스를 뒤덮었다.
지난해 여름은 우리나라 113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절기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평균 기온 14.5℃로 평년보다 2.0℃ 높고 종전 2023년보다 0.8℃ 높았다. 연간 열대야일수는 24.5일로 평년 6.6일보다 3.7배 많았다. 강수량은 평년 수준이지만 7~9월 16개 지점에서 시간당 강수 100mm 이상 기록했다. 해수면온도는 18.6℃로 최근 10년 대비 1.3℃ 높았다. 관련해서 온열질환자 수가 3704명으로 전년대비 34.1% 늘었다. 34명이 사망했다.

◆개별적 이상기상 맞춤 연구 필요 = 올 3월 발생한 산불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더 덥고 건조하며 바람이 강한 기상 조건이 있었다. 최대 2℃ 높고 하루 강수량이 최대 2mm(최대 30%) 더 적고, 바람은 최대 시속 4.8km(최대 10%) 강해졌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러한 산불 발생에 유리한 조건의 증대는 주로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외국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권 교수는 “개별적인 이상기상 현상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극한기후에 따른 구체적인 건강영향 연구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남 연세대의대 교수에 따르면 태풍 발생 시 △심혈관질환 △당뇨 △신장질환 △정신질환으로 인한 의료이용이 증가한다. 집중호우 발생 시 △전체 사망 △사고사 사망 △총손상 사망 △골절로 인한 응급실 증가 현상이 생긴다. 산불 발생 시 호흡기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생긴다.
그런데 언론보도와 행정기관 파악 내용과 현장상황 차이가 있어 ‘이상기상현상 건강영향 실태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피해가 여러 행정지역에 걸쳐 흩어져 발생하고 대피소 대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신체정신적 건강영향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 기후재난에 사실상 방치 = 기후위기가 기존 사회불평등 환경과 맞물려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재경 경기연구원 실장은 “폭염, 한파, 감염병, 대기질 악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위해 요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인인구 증가와 더불어 기존의 취약계층의 취약성이 더욱 심화되고 건강불평등이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기후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폭염 영향에 대한 인식은 농촌, 도시를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높다. 하지만 녹지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평균 온도가 낮다. 산업단지나 교통 밀집 지역 등은 열환경에 특히 취약하다. 일터에서의 건강 리스크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저소득층일수록 에어컨과 난방 만족도가 낮아 에너지 빈곤과 건강불평등이 동시에 심화되고 있었다.
특히 옥외 노동자와 산업현장 근로자는 주로 산업안전보건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어 생활권 중심의 기후보건정책과 연계가 적다.
고 실장은 “기후보건 정책은 그간 기저질환자, 고령층 등 개인의 취약성에 중점을 뒀지만 기후 영향은 주거지의 녹지, 물순환 인프라, 주거환경의 질, 지역 내 보건인프라 분포 등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건강도시의 핵심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를 반영한 보험제도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 및 건강정보의 통합을 기반으로 위험 예측과 조기경보 체계를 강화해 선제적인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한다”며 “건강취약계층의 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보다 포용적인 보험 접근성과 구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지자체-민간 합동 대응 매뉴얼 갖춰야 = 이상기상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헌 성균관대의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02년 산불연기 대응 가이드를 처음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보건부가 주도하고 미국 환경보건청, 지방 보건부, 기상청 등의 의견을 반영해 작성됐다. 2019년 개정판에는 산림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참여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산불 연기 노출과 관련된 위험소통을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다뤘다. 이는 국내 산불 대응시 건강 측면에서의 위험소통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산불 발생 시 가정에서 공기질 유지를 위한 조치와 산불 진화 이후 남은 재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는 방법 등 정보가 들어갔다. 어린이, 고위험군, 야외근로자, 반려동물 및 가축 등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는 산불 대응 주무부처가 산림청으로 돼 있다. 적극적인 건강 대응에 한계가 있다.
또 손상과 재난 대응과 관련해서 국내 역학조사관의 역할은 감염병 대응에만 한정돼 있다. 미국의 주 및 지방정부의 역학조사관 협의체는 매년 학술 대회를 열고 발표 주제의 약 30~40%는 산불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으로 인한 건강피해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한편 국내 재난 분야는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담당하고 있으나 건강분야에서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1990년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건강 영향 연구는 전무하다. 2002년 태풍 루사와 같은 대형 기후재난의 건강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2020년 섬진강 유역 홍수 역시 재산 피해와 인명 손실은 조사됐지만 건강 피해 평가는 없었다.
김 교수는 “미국 산불 대응 가이드라인을 보면 왜 다양한 부처의 역할이 구분돼 있는지 알 수 있다”며 “부처간 업무 분장을 위한 제도적 장벽이 높다면 우선 협의체를 구성하는 게 필요하며 필수적으로 수행돼야 할 업무부터 명확히 정리하고 분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해서 질병관리청는 ‘기후보건 중장기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안윤진 질병관리청 기후보건·건강위해대비과 과장은 “기후변화가 심화됨에 따라 이상기후의 빈도와 강도가 심해져 국민 건강위협이 커지고 있다”며 “건강영향 내용과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상기후로 인한 건강피해를 대비하는 보건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 과장은 “기후보건 정책 수립과 이행을 위한 업무연계, 조사·연구사업 수행 등을 위한 청-권역별 대응센터-지역 및 민관 협력체계를 갖추고 유관 부처와도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