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통상·소상공인 지원’ 12.2조 추경…국회서 증액 가능성
시급현안·신속집행 93개 사업 ‘필수추경’ … 예비비 1.4조↑
국채 8.1조 발행 … 관리재정적자 GDP비율 2.8→3.2%로
22일 국회 제출 … 경기부진 해소 마중물 역할 역부족 지적
정부가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했다. 코로나펜데믹 막바지였던 지난 2022년 5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내놓는 역대 첫 추경이기도 하다. 최악의 산불 피해와 내수부진, 전례 없는 미국발 관세 충격 등으로 추가재정 투입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입장차가 있기는 하지만 추경 편성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내수 진작을 위해 적어도 15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심사과정에서 추경 규모가 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경안은 국회 심사 절차 등을 거쳐 이르면 5월 초 국회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급한 현안대응 필수추경” = 정부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12조2000억원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당초 제시한 규모보다는 약 2조원 늘어났다. 정부는 시급한 현안과 직결되고 연내 신속집행이 가능한 사업을 중심으로 14개 부처 93개 사업을 포함하며 ‘필수 추경’이란 이름을 붙였다.
3대 사업분야에 △재해·재난 대응 3조2000억원 △통상·인공지능(AI) 지원 4조4000억원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 4조300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최근의 산불피해와 더불어 여름철 태풍·집중호우 등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예산국회에서 감액된 예비비 가운데 1조4000억원을 증액한다.
기획재정부 김윤상 2차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필수추경은 산불 피해 등 재해·재난 대응, 통상·AI 경쟁력 강화, 민생회복·안정이라는 우리 경제의 시급한 현안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일 예산실장은 “민생지원 쪽에 새로운 대형 사업들을 많이 도입했다”며 “추경의 목적에 맞게 금년도에 집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국채이자 등으로 약 2000억원을 투입했다. ‘외화표시 외국환평형채권’ 발행 한도는 기존 12억달러에서 35억달러로 23억달러 증액된다. 환율 급변동에 대한 적기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외화 외평채 확대분만큼, 원화 외평채 발행한도는 축소된다.
◆국채발행 8조1천억 = 추경 재원으로는 기금 자금을 비롯한 가용재원 4조1000억원을 투입하고, 부족한 8조1000억원은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그만큼 재정적자 규모는 불어나게 된다. 국가채무는 10273조원에서 1279조원으로 6조원 늘어난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73조9000억원에서 84조7000억원으로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2.8%에서 3.2%로 늘면서 재정준칙 한도(3%)를 웃돌게 된다.
올해 총지출은 673조3000억원에서 685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전년 대비 총지출 증가율도 2.5%에서 4.4%로 높아진다.
총수입도 한국은행 잉여금 초과수납분, 지방채 이자수입 등이 반영되면서 651조6000억원에서 652조8000억원으로 1조3000억원 증가한다.
이번 추경의 성장률 제고 효과는 0.1%p 정도가 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다만 경기진작 목적의 추경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재해·재난과 관세 대응,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도 간접적으로 내수 경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경기 대응을 목적으로 편성한 추경은 아니라는 뜻이다. 김윤상 차관은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 순수하게 경기진작을 목적으로 편성한다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포함해서 소비와 투자 쪽으로 내용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며 “앞으로도 추경 외에도 필요한 경우 기금변경 등 추가적인 재원보강 방안을 지속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추경규모 늘어날 수도” = 국회의 증액 논의 등에 따라 추경 규모는 최종적으로 불어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최소 15조원 규모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김 차관은 “국회에서 증액 요구가 있을 때 저희가 죽어도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규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추경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추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국회에서 추경안을 최대한 신속히 통과시켜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오는 22일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번 추경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편성된 62조원 규모의 추경 이후로 약 3년 만에 추진되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2022년 5월 코로나19 장기화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해 59조원의 추경을 내놨고, 62조원 규모로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4일 대통령 파면으로 윤석열 정부가 간판을 내린 상황에서 징검다리격 권한대행 체제에서 편성된 첫번째 추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추경 규모가 내수증진에는 실효가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체 규모도 크지 않지만, 정부가 제시한 추경이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등에 집중돼 소상공인 지원 등을 통한 내수 증진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선 이후 결국 추가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AI 등은 민생 현안과 상관이 없다”며 “12조원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민생과 관련한 추경 규모는 3조~4조 원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 막대한 재정 투입에 비해 내수 증진 등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