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추진 PF사업장 2개월 만에 2배 늘어
사업성보다 손쉬운 지급보증 의존이 원인
중견건설업체 부도로 부실사업장 더 늘 듯
국내 부동산시장 침체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으로까지 늘어난 ‘미분양 폭탄’으로 대출에 의존하는 PF사업장이 붕괴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올 들어 중견 건설업체들이 잇달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부실사업장이 늘어날 우려가 더 커졌다.
24일 금융·건설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1분기 전체 부동산PF 사업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결과에 따라 지난해 감소세로 돌아섰던 부실사업장이 다시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부동산PF 부실규모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22조9000억원에서에서 12월 말 기준 19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업계에서는 금리인하와 금융당국의 부실사업장 정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실규모가 추가로 감소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금리인하 속도는 예상에 미치지 못했고 치솟은 원자재 가격은 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올 들어 악성 미분양 물량까지 증가하면서 자금 회수에 차질이 빚어져 시행사 시공사 금융기관 전체의 경영부담이 커졌다.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개시한 9개 중견 건설사들이 시공했거나 시공 중인 사업장들도 부실판정을 받을 수 있다.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은 또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다.
이처럼 미분양 불똥이 건설업계는 물론 금융계로까지 쉽게 전이되는 상황은 재무구조가 취약한 시행사가 시공사 보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규모 대출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적 특수성이 주요 원인이다.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시행사는 통상 토지구입비 10% 수준인 계약금만 투입한 후 브릿지론으로 잔금을 치른다. 시공사는 이후 인허가를 취득해 착공하는 시점에 다시 금융기관에서 본 PF 대출을 받아 브릿지론을 상환하고 남은 자금을 건설비로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은 관행적으로 사업성 검토보다 쉽고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시공사의 지급보증을 요구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왜곡된 시장구조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치권과 정부에 의해 탄생했다고 지적한다. 주택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권의 이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사업을 투기시장으로 전락시킨 이런 구조는 한탕을 노리는 영세사업자가 부실사업장을 양산하는 폐해를 남겼다. 2010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부동산PF는 경제 위기설의 근원지가 되곤 했다.
최근 금융·건설업계 안팎에서는 ‘7월 위기설’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사업성 평가에서 드러난 부실 PF 사업장을 정리하기 위한 경매와 공매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 정보공개 플랫폼에 따르면 금융권에서 매각을 추진 중인 부동산PF 사업장은 올 3월 31일 기준 384곳이다. 1월 22일 기준 195곳에서 2개월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3~4곳을 제외한 대부분 물건이 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부실사업장 정리에 나서더라도 이를 사들일 여력이 있는 업체가 많지 않아 당분간 매물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면서 “특히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까지 증가하는 미분양 물량으로 신규 투자에 나설 업체가 얼마나 나타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