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모로코 청정지역에서 '한국의 맛' 길러요"
아가딜의 '한국 토종농사꾼'이종완-김명숙 완푸드 사장 부부
세상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 김치 같은 음식이 있을까. 하루 세끼 상차림에도, 학생이나 직장인들의 도시락에도, 등산객의 배낭에도, 해외 이민 가는 사람들의 이삿짐 속에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김치다. 매년 늦가을쯤 한국의 가정은 너도나도 김장김치를 담그느라 전국이 한 바탕 법석을 떤다. 겨울문턱에서 매년 치르는 거족적인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나 대단하면 유네스코가 김치와 김장문화를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까지 했을까. 김치 없이는 단 몇 끼 식사를 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세계 어느 구석에 가 있더라도 한국인은 김치를 조달해 먹는다. 한국인이 있는 곳에 김치가 있다. 그리고 김치가 필요한 곳엔 배추와 무, 고춧가루, 젓갈 등이 필요하다. 수요가 있는 곳엔 공급도 있다.
완만한 비탈에 너른 채소밭이 펼쳐져 있었다. 한 가운데 가장 널찍한 면적을 차지한 배추밭을 중심으로 알타리 무, 부추, 쪽파, 돌산 갓 등 갖가지 채소들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푸른 채소밭 끝자락으로는 쪽빛 대서양 물결이 넘실거린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남서쪽으로 90㎞ 쯤 달리면 산업도시 엘 자디다가 나오고, 그곳을 빠져나와 또 20㎞쯤 내려온 곳이었다. 대서양 저편으로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50대 후반과 그 초반쯤으로 보이는 동양인 남녀가 모로코 현지인 농부가 배추 수확을 하는 일을 거들고 있었다. 노란 속이 꽉 찬 배추는 한 포기만 들어도 가슴을 꽉 채울 만큼 실하게 자라 있었다.
<'모로코의 한국 토종 농사꾼' 이종완·김명숙 완푸드 사장 부부가 북서부 대서양변의 산업도시인 엘자디다 인근 농장에서 탐스런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이 사장 부부는 엘자디다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건설업체 기술자 500여명 등 모로코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김치와 두부, 떡 등 우리 먹거리를 판매하는 식품사업을 하고 있다. >
배추 수확을 거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로코의 한국 토종 농사꾼' 이종완(57) 사장과 그의 부인 김명숙(51)여사였다. 이 사장 부부는 모로코에서 배추와 무, 쑥갓, 부추, 파 등 우리나라 채소를 재배하고, 김치와 두부, 떡, 고춧가루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완푸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모로코 남서부 대서양변 휴양도시인 아가딜에 두 곳, 북서부 산업도시인 엘자디다에 한 곳 등 모두 세 곳에서 총 3㏊ 규모의 채소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 일찍 아가딜의 집을 출발해 500㎞ 떨어진 이곳 엘자디다의 농장까지 달려온 참이었다.
이 사장 부부는 현지인 농부들에게 영농시설을 갖추어주고, 토종 씨앗을 제공해준 뒤 재배법까지 가르쳐 주고, 직접 농장을 돌아다니며 작물 수거까지 하는 반 위탁, 반 직영 방식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가딜에서는 직접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떡과 김치, 고춧가루, 두부 등 우리 먹거리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채소농장과 방앗간 운영을 통해 이 사장 부부가 올리는 매출은 월 평균 30만 디람(약4000만원) 정도. 앞으로는 모로코에서 가까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매운 음식을 즐겨먹는 모로코 현지인들에게도 김치와 고춧가루 판매룰 확대할 계획이다.
이 사장 부부는 완푸드 이외에도 모로코 특산품인 아르간 오일과 수산물 등을 수출하고, 그물과 낚시 바늘 등 한국산 어구를 수입하는 무역회사 '바이오MS모로코'도 운영하고 있다. 한 때 우리나라 어망을 수입하는 것만으로도 연간 200만 달러 매출까지 올리는 등 무역업으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이게 웬 일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배추 겉잎사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힘들여 농사지은 배추에 누가 먼저 입을 댄 것일까.
"오늘 저녁은 달팽이 요리로 해야겠어요. 이것 보세요. 버릇없이 배추에 먼저 입을 댄 놈들입니다."
배추밭 고랑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 뭔가를 열심히 집어내던 김 여사가 일어나면서 손바닥을 내 보였다. 김 여사의 손에는 달팽이들이 한 움큼 들어있었다. 옆에 있던 이 사장이 김 여사의 말을 거든다.
"모로코 농부들은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아요. 100% 유기농 농사로 생산하는 무공해 채소입니다. 달팽이가 배추를 먹어치워도 약을 치지 않아요. 손으로 일일이 잡아냅니다. 이곳은 겨울철인 10월과 3월 사이가 주 수확기입니다. 겨울철엔 달팽이 이외엔 벌레가 없어요. 농약을 아예 한 번도 안칩니다. 화학비료조차 거의 쓰지를 않습니다. 소나 염소 외양간에서 나오는 거름으로 비료를 쓰지요. 여름철 새싹 나올 때만 한두 번 농약을 칩니다. 여름에는 벌레가 많아서 새순을 먹어치우거든요. 모로코는 토질이 아주 좋습니다. 무 하나에 5㎏까지도 나갑니다. 배추도 큰 건 4㎏까지 나갑니다. 무도 배추도 육질이 아주 단단합니다. 모로코는 사시사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후입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심어서 수확하면 된다는 거지요. 겨울철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고, 더운 여름엔 북쪽지방으로 올라와 농사를 짓는 거지요. 저는 이곳 엘 자디다와 이곳에서 500㎞ 남쪽의 해안도시 아가딜 두 곳에서 배추와 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모로코 농부들에게 위탁영농 형식으로 재배하고 있어요. 물론 제가 일일이 재배법을 가르쳐 주면서 하는 일이지요."
배추밭을 둘러본 이 사장부부가 차를 타고 엘자디다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엘자디다는 카사블랑카에서 남서쪽으로 90㎞ 떨어진 대서양변의 도시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인들이 건설한 마자간(Mazagan) 요새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마자간 요새는 신대륙으로 탐험을 떠나던 포르투갈 사람들을 위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곳이다. 그러나 마자간 요새를 빼고는 엘자디다는 분주한 산업도시였다. 엘자디다 초입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공장굴뚝들이 우뚝우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기 굴뚝들이 보이는 곳은 화력발전소입니다. 모로코 최대 규모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요. 모로코의 주요 광물자원인 인광석으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도 이곳에 있습니다."
엘자디다 시내로 들어선 이 사장의 차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적한 동네의 한 집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이 사장을 기다라고 있었던 듯 몇 사람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이 사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이들은 이 사장 차의 트렁크를 열고는 짐을 건물 안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우리나라 건설업체 직원들이 묵고 숙소 중 하나 입니다. 방금 저와 인사를 한 분은 한국인 주방장이에요. 이곳에는 매주 김치 40㎏을 배달해 주고 있어요. 모하메드가 키운 배추와 무 등 야채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 엘자디다 전체에 대우건설과 삼성건설, 포스코 등 우리 건설업체 직원 500여 명이 나와 있습니다. 대우건설이 화력발전소 5호기와 6호기 건설을 하고 있고, 삼성건설이 인광석 비료공장을 짓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드시는 김치와 배추, 무 등을 조달해 주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두부도 직접 콩을 갈아서 만들고, 젓갈도 싱싱한 생선을 사다가 직접 담가서 우리 기업체 직원들 식당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김치와 배추 배달을 마친 뒤 다시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정육점과 야채가게, 구멍가게 등이 들어서 있는 정겨운 골목이었다. 이 사장 부부가 2층짜리 빌라형 건물의 계단을 오른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동안 집을 비워 놓은 듯 썰렁한 냉기가 몰려온다. 방 세 칸에 주방과 거실, 욕실이 딸린 집이었다.
"이 집은 엘자디다에 일을 보러 올 때만 사용하는 장소입니다. 앞으로는 이곳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아요. 엘자디다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건설 기술자들로부터 김치와 두부, 고춧가루 등 주문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엘자디다는 또한 대기업 주재원 등 우리 동포들이 많이 몰려 사는 라바트와 카사블랑카와도 한 두 시간 거리입니다. 그곳 동포들로부터도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가딜에 있는 방앗간도 이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엘자디라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는 데도 지정학적으로 아주 수월한 위치입니다. 앞으로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대륙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동포 사회까지 차근차근 시장을 개척해 볼 생각입니다."
거실 한쪽에 쌓아놓은 박스엔 가을하늘무, 알타리무, 부추, 대파, 청한무 등 우리나라 채소 씨앗을 담은 봉지들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모로코 땅에서 한국의 맛을 길어 올릴 우리나라 토종 씨앗들이다. 김치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 덕에 우리나라 토종 채소들도 덩달아 먼 모로코까지 해외 나들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가딜 해변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가딜은 모로코 남서부 대서양변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
아가딜은 하얗게 빛나는 보석 같은 도시였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하얀 백사장이 하얗게 밀려오는 대서양의 파도를 넉넉한 품으로 안아 들이고 있었다. 도시는 활 모양으로 휘어진 해안선을 따라 조성돼 있었다. 아름드리 야자수 도로를 따라 조성된 시가지는 이슬람풍과 유럽풍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가딜 시민들이 항구에서 정어리 새끼 소금구이를 먹고 있다. 아가딜은 모로코의 대표적인 어항중 하나다>
참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머나먼 이국 땅 대서양변의 아가딜에 고향마을의 방앗간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다. 영화 스타렉스에서 나오는 순간이동장치 같은 게 정말 있는걸까. 아가딜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20㎞쯤 외곽인 아즈루 아이트 멜루 지역에 제법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각종 야채와 과일, 생선 등 먹거리와 옷, 신발, 가재도구 등을 거리에 펼쳐 놓은 상인들이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이종완 사장이 모로코 농민들로부터 사들인 태양초로 고춧가루를 만들고 있다.>
그 시장의 초입에 우리나라 시골 방앗간 하나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낯익은 제분기와 분쇄기 등이 설치돼 있었다. 한 쪽 기계에서는 웅 웅 웅 피댓줄이 돌아가면서 빨간 고춧가루가 쏟아져 나온다. 이 사장이 굵직굵직한 태양초를 고추 분쇄기에 쏟아 붓고는 막대기로 자근자근 눌러주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다가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원양어선을 타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수수산전문학교로 진학을 했지요. 처음 스페인 라스팔마스를 시작으로 이곳 아가딜까지 와서 모두 8년 동안 배를 탔습니다. 그 이후에 큰 처남이 하는 선원 송출회사의 아가딜 기지장을 10년 정도 했지요. 그러던 중 우리 송출회사의 모로코 파트너사가 경영부실로 문을 닫았어요. 큰 처남 회사도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뭔가 먹고 살 일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방앗간을 차려 한국식품 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방앗간 사업이 생각한 것만큼 수지가 맞는 사업이 아니었다. 주 고객이었던 한국 사람들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줄어들기 시작했다. 두 아이들 학비조차 마련하기도 버거웠다. 한 학기 학비를 내고 나면 그 다음 학기 학비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쪼들렸던 것이다.
"그래도 산 입에 풀칠하라는 법은 없나 봐요. 제가 무역 일도 하고 있었거든요. 부산의 경희어망과 낚시 바늘회사인 유벨라의 에이전트 역할을 했어요. 모로코 특산품인 아르간 오일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일도 했습니다, 세 회사의 무역 에이전트 역할을 하니까 돈벌이가 제법 되더라고요. 2007년부터는 돈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로 형편이 풀렸습니다. 한국 어망 수입하는 것만으로도 연간 200만 달러 정도 매출을 올렸거든요. 낚시 바늘은 한 해 10만~15만 달러 정도 팔았습니다.
사실상 방앗간을 방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부터 모로코에 한국기업들이 갑자기 여럿 들어왔거든요. 대우건설과 삼성건설, 포스코 등 우리나라 대형 건설 회사들이 속속 모로코 대형 공사들을 수주했습니다. 공사 현장에 우리 기술자들 수백 명이 들어오면서 김치와 두부, 채소 등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주문이 밀리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우리 부부 두 사람이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지요. 엘자디다로 방앗간을 확장 이전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김명숙 여사가 우리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한 두부를 자르고 있다. 두부는 중국인과 일본인 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다이어트 영양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사장과 김 여사가 천으로 둘러친 나무 상자 안에 뜨거운 순두부 물을 붓는다. 나무 뚜껑을 덮고는 지긋하게 누르며 간수를 짜낸다. 김 여사가 간수를 짜낸 뒤 천을 걷어 내고는 익숙한 솜씨로 두부를 반듯하게 자르기 시작한다.
"최상급 콩으로 두부를 만듭니다. 썩은 콩이나 묵은 콩은 이상하게도 두부가 안 되더라고요. 좋은 콩으로 만들어야 구수하고 쫄깃한 두부가 만들어 집니다. 간수는 모로코 천연염전에서 나오는 소금으로 만듭니다, 노후엔 두부만 만들어 팔아도 먹고 살 수 있어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철수하더라도 중국인과 프랑스인, 모로코인 등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면 됩니다. 두부가 다이어트 영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거든요. 일본 '토푸'가 이곳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데, 그걸 우리가 공략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토푸는 현지 생산이 아니고 수입식품이거든요. 무려 80.25% 세금을 물고 들어오는 겁니다. 중국인들은 카사블랑카를 중심으로 무허가로 만든 두부를 비싸게 팔고 있어요. 지금 우리처럼 현지에서 직접 만든 질 좋은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면 가격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 모두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거지요."
모든 사업은 지속가능성의 틀로 봐야 한다. 이 사장 부부가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댔고, 쏠쏠한 재미를 본 아이템도 있었지만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의 어망이나 낚시 바늘, 모르코의 아르간 오일 등 모두 수요 창출에 있어서 가변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식품 사업은 우리나라 동포들의 숫자만 일정부분 확보 되면 언제나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품목이었다. '모로코의 한국 토종 농사꾼' 이 사장 부부는 우리 동포들을 넘어 아프리카와 유럽, 중동 사람들을 한국의 맛으로 공략하려는 야심찬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박상주 언론인·오지여행가 sangjooo@gmail.com